건물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는 것 같은 에세이. 클래식과 피아노에 관심 있으면 서재 한 켠에 꽂아두고 틈틈이 읽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언젠가 그랜드 피아노를 하나 장만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저자의 문장이 정영목 선생님의 번역을 통해 아름답게 빛났다.
#기억에남기고싶은문장
여름이 가을로 바뀌면서 동네 거리는 이 계절의 파리 특유의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넓은 가로수길 모퉁이의 카페는 앞에 놓아두었던 야외 탁자를 한두 줄만 빼고 다 거두어들였다. 밖에 남은 탁자는 잿빛을 띤 푸르스름한 구름 사이로 햇살이 한 줄기 비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 강인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길을 따라가며 마주보고 있는 밤나무는 녹이 슨 듯한 갈색으로 바래면서 내키지 않는 듯 잎을 떨어뜨렸고, 머리 위로 아치를 그렸던 녹색 터널은 길고 검은 가지의 그물로 바뀌었다. 저녁에 보도를 어지럽힌 밤은 다음 날 동이 틀 무렵이면 배수구의 가차 없는 물살에 쓸려나갔다. (p.92)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라디오도, 전화도, 건축도, 텔레비전도, 영화도, 자동차도, 컴퓨터도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오락은 아직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급속한 산업화로 빠르게 성장하던 상인계급에게 돈은 풍부해졌고, 그와 더불어 여가시간도 늘어났다. 친구와 이웃을 만날 시간이 많아졌으며, 그들을 즐겁게 해줄 돈도 많아졌다.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행사가 점점 인기를 끌었다. 피아노는 사교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p.137)
1821년 빈의 악보 출판업자 안톤 디아벨리는 자신이 쓴 왈츠를 저명한 작곡가 50명에게 보내 변주곡을 한 곡씩 써달라고 했다. 청탁을 받은 작곡가에게는 슈베르트, 훔멜, 체르니, 열 살 난 리스트도 있었다. 베토벤은 처음에는 이 기획을 경멸했지만, 곧 그 수수한 곡을 이용하여 자신의 변화무쌍한 창조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베토벤은 이 주제를 이용한 33곡의 교묘한 변주곡에서 2류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패러디하고, 바흐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암시하고, 쇼팽을 예감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모든 피아노곡 작곡가를 압도하는 숭고한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른다. 간단히 말해서 베토벤은 이 한 시간짜리 작품에 자신의 모든 예술을 요약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서구 상상력의 우뚝한 성과로, 고전주의 시대를 위한 위대하고 근본적인 선언 –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바로크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 이라는 데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오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들만이 이 걸작의 설득력 있는 해석을 들려줄 수 있는데, 지금 누군가가 이 음악을 완전히 장악하여 아름다움의 파도를 섬세하게 밀어내듯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