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죽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죽음을 향한 과정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 이후에 숨 쉴 수 없고, 감각도 사라지며, 심지어 사유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의 소멸이 무섭다. 차라리 만화 <유유백서>의 주인공처럼 죽음 이후에 영혼이라도 남는 것이라 믿을 수 있다면 그나마 반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텐데, 도무지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깐. 그래서 죽음이 키워드인 책이 눈에 띄면 시간을 내서 읽곤 했다. 작년 초의 <숨결이 바람 될 때>에 이어 이번에 읽은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원제: Being mortal)>이다. 흥미롭게도 두 책의 저자 모두 의사다.
전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의사의 회고록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을 대하는 현대 의학의 태도를 비판한다. 의학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고 있지만 단지 죽음을 조금 더 늦추는 것일 뿐 멈출 순 없다. 이렇게 생명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시설과 편안한 서비스가 아니다. 생애 끝까지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p.175)
1990년대 초, 빌 토마스란 젊은 의사가 중증 장애를 가진 노인 80명이 수용된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 작은 실험을 했다. 그는 무료함과 외로움 그리고 무력감이 가득한 이곳에 필요한 것이 활력이라 생각했고 동물과 식물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청결도에 대한 우려와 달리, 그로부터 2년 뒤의 결과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비교집단에 비해 약 구매 비용이 38% 밖에 안됐고 사망률은 15% 감소했다. 노인들은 동물과 식물을 키우며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다.
‘즉, 우리는 지금도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그리고 그저 수수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p.159)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언젠가 저물어갈 때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가짐이 한결 달라졌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지도.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p.94)
우리가 만들어낸 시설과 제도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병원 입원실을 비우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노년층의 빈곤을 극복하려는 목적 말이다. 그러나 그 시설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가 병들고 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도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 말이다. (p.124)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p.168)
용기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p.355)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를 가진 듯하다. 하나는 매 순간을 동일한 비중으로 견뎌 내는 ‘경험하는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흐른 후 최악의 시점과 종료 시점 단 두 군데에만 거의 모든 비중을 실어서 평가하는 ‘기억하는 자아’다. 기억하는 자아는 심지어 마지막 순간이 완전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할 때조차도 ‘정점과 종점’에 고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30분 넘게 극심한 통증을 경험했더라도 시술 과정에서 마지막 몇 분간 만이라도 통증이 없었다면 환자의 전체 통증 평가 지수가 극적으로 낮아졌다. (p.362)
이른바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p.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