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누군가는 하루키가 자기 복제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가 이 책을 통해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단편 소설집의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놓인 글들로 가득하다. 언뜻 보면 에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찰리 파커, 비틀즈, 야쿠르트 스왈로즈 그리고 클래식과 같이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해오던 것들이 등장한다. 보드카 김렛을 마시는 것도 물론이고. 자기 복제와 무슨 차이냐고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서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냥 느낌이 그런 거니까.

근황이 궁금해 구글에서 이미지를 찾다가 작년 2월 뉴요커에 올라온 모습을 발견했다. 영원히 청춘일 것만 같았던 그도 많이 늙었구나. 오랫동안 건강히 살면서 앞으로도 많은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기억에남기고싶은문장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