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는 몇 번이고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웬만한 고전이 그러하듯이 시작 부분이 유난히 읽히지 않았고, 작가의 묘사와 조르바의 거침없는 언변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조금의 강제성을 담아 꾸역꾸역 읽으니 새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던가. 위선이 가득한 세상에 살며 읽어서인지 그가 표현하는 본능적인 욕구와 솔직함이 유난히 와 닿았다. ‘위대한’이란 수식어는 개츠비보다 조르바 앞에 놓여야 했다. 인상 깊은 문장이 많아 쉴 새 없이 적었다. 종종 등장하는 샐비어(사루비아, 세이지)주는 궁금해서 보드카에 냉침한 뒤 마셔볼 예정.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p.22)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오.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며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p.82)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가슴속에서 인생이 마지막 기적을 완성했다는 것, 곧 인생이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p.174)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p.175)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p.177-178)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놀랍고도 기뻤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p.199)

그래, 저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절대적 리듬을 찾아내고, 절대적 신뢰로 그것을 따르는 것. (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