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말로 궁금한 모임이 있었다. 미국 어느 사막에서 매년 8월 말부터 열흘 동안 반짝 생겼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에릭 슈미트와 엘론 머스크 등의 기업가들이 단골로 방문한다는 모임, 바로 버닝맨(Burning man)이다. 버닝맨을 구글에 검색해보면 흡사 영화 매드맥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탈 것들이 보인다.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알고 보니, 버닝맨은 온갖 혁신의 장이 열리는 커뮤니티였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와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더불어 거친 모래바람으로 시야가 1m가 채 안되기도 하고,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곳곳에서 들리며, 환각제를 쓰는 경우도 있다니 그야말로 한 번 가면 뽕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버닝맨을 통해 배운 점은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판이 제대로 깔리기만 한다면 매력있는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경험해보고 싶다. (덧. 저자가 경험담을 깔끔하게 정리하셔서 읽는 내내 만족스러웠음)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도대체 넌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서 흔들릴 때가 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떤 이는 잘하려면 하나에 집중하라 조언하고, 어떤 이는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만 잘하는 전문가를 바라는 세상에서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 다재다능한 사람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지 말이다. 명함에 적힌 타이틀 하나로 자기 소개가 압축되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 철학자 작가였던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한 단어로 대체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해 여름 사막에서 나는 현대의 수많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만났다. (p.14-15)
그 짧은 순간 ‘드디어 도착했구나’라는 실감과 함께 설렘, 두려움, 낯섦, 그리고 이질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정말 오길 잘한 걸까’라는 불안감도 겹친다. 수많은 이유와 논리를 만들어 버닝맨에 왔으면서도 ‘왜 갑자기 여기 있지?’라는 생각도 든다. 생각이 초기화된 것만 같다. 강한 저항은 가장 큰 변화와 혁신의 과정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라면, 어쩌면 그 저항의 시간은 버너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일 것이다. (p.40)
버닝맨 참가자들은 리얼 월드이자 홈인 블랙 록 사막에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가 근본적 자기표현이다.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디폴트 월드에서 시도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평소 입고 싶었던 옷을 구해 입고, 액세서리와 문신을 하며, 어제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 나를 표현한다. (p.81)
버닝맨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가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수많은 과정과 장벽을 뛰어 넘어서라도 꼭 가야 할 이유와, 그 이유를 실천으로 견인할 강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믿음이란 단순히 강한 확신이 아니라 소신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믿음에 가깝다. (p.88)
버닝맨 창업자들과 열성 버너들에게는 독특한 믿음이 있다. 인간의 의식은 지금보다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명상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때로는 강력한 환각제까지 써가며 무의식 너머에 있는 잠재의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같은 이유에서 서양의 철학이나 동양의 종교를 공부하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그것을 기술의 힘을 빌려 실현하고 싶어 한다. 생각의 범위가 확장된다면 수백, 수천 배 더 창의적인 기술적, 예술적 진보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p.14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