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이십대 초중반에 파리에 머물며 쓴 에세이.
그에 대해서는 오로지 ‘파파(Papa)’의 이미지로만 가득했는데, 익숙치않던 파릇파릇한 청년 시절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가령, 가장 가난했던 시절이라 끼니를 굶어가며 글을 쓰고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책을 빌려가던 모습이라든지, 거트루트 스타인에게 꾸중을 들으며 생각을 다듬는 장면에서는 왠지모를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일화는 절대로 빼먹을 수 없다) 물론, 제목을 맹신하면 안 된다. 헤밍웨이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파리 생활에 대해 극찬하여 책의 제목(A movable feast)이 지어졌지만, 이 책에서는 파리의 축제 같은 모습만 담긴 것은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소득은 뒷 부분에 있는 간략한 연대기와 함께 곁들여진 사진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희끗해 질때까지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바뀌는 부인들의 모습도. 그렇다. 그는 공식적으로 네 명의 부인이 있었다.) 또한 연대기를 통해 바라본 그의 삶은 너무나도 다이나믹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자신이 소유한 배를 이용해 독일 잠수함을 쫓기도 했으며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등 생명이 위태로운 경험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그의 소설을 탄생하도록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보통 어느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관심이 생기면 그의 삶을 살펴보는데, 헤밍웨이는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무기여 잘 있어라>와 몇몇 단편들을 제외하곤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일단 궁금한 것은 그의 단편 중 가장 훌륭하다는 <살인자들, The killers>!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P.19
세잔의 그림들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을 쓰려면 간결하고 진솔한 문장을 구사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세잔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잘 설명하기에는 내 표현력이 부족했다.
> 그림을 보고 그 누구보다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 그냥 설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p.101
곤궁한 시기에는 경마장 출입을 포기해야 했다. 돈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기에 나는 넘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준에서 봐도 우리 부부는 몹시 궁색했고, 나는 점심 초대를 받았다고 말하고는 두 시간 동안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멋진 식사를 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아 적게나마 돈을 절약하곤 했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건장한 체구를 타고난 나는 끼니를 거르면 몹시 허기가 졌다. 하지만 배고픔은 나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해주었다. 나중에 보니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식욕이 강하거나, 미식가이거나, 혹은 식탐이 있거나,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p.133
“난 요즘 도스토옙스키에 탄복하고 있어.” 내가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형편없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글을 쓰면서도 읽는 이에게 그토록 심오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P.167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일화
그는 과거에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해서도 별로 애석해하는 기색 없이 하찮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한 새 작품에 대해서는 결점을 꼬집어 말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스스로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새 책 <위대한 개츠비>를 누군가에게 빌려 주었다며, 돌려받는 대로 내게 보여줄 테니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이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스콧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중략)
지금 생각해 보면 스콧을 나이 든 작가로 여겼던 것이 이상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 보기 전이었던 당시에 나는 그를 별로 대단치 않은 습작 수준의 유치한 작품 한 권과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소설 책 한 권을 발표한, 꽤 나이 든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P.171
내 글을 일일이 분석하여 기교를 부린 대목을 삭제하고,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글에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애쓰기 시작한 이래 글쓰기는 내게 더없이 경이로운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몹시 고된 작업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장편 소설’이라는 긴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내내 고민하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글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 나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P.191
그가 내 이름의 철자를 정확히 쓸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꼬박 2년이 걸렸으나, 내 이름은 철자를 제대로 쓰기엔 길었고, 아마도 그는 매번 그것을 쓸 때마다 어려움을 느꼈을 터이므로, 나는 그가 마침내 내 이름을 정확히 쓸 수 있게 된 것을 대단한 성과로 생각하고 있었다.
> 심지어 나도 단번에 외운 Ernest miller hemingway를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는 점에서 피츠제럴드의 독특한 성격을 알 수 있다.
P.207
“내가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바로 그 문제야.”
“좋아. 뭔지는 모르지만 말해봐.”
“젤다는 내가 신체 구조상 어떤 여자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면서 그게 바로 그녀가 근본적으로 내게 불만을 느끼는 이유라고 하더군. 그녀는 그게 크기의 문제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은 뒤로는 결코 예전처럼 느낄 수가 없어서 난 진실을 꼭 알아야겠어.”
“따라오게.” 내가 말했다. “아니면 자네가 앞장서든가.”
“어디로 가는데?”
“어디긴 어디야, 화장실이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잠시 후 레스토랑 안으로 돌아와 테이블에 앉았다.
“자넨 완벽하게 정상이야.” 내가 말했다. “자네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위에서 내려다봐서 자겍 보이는 것 뿐이야. 루브르에 가서 조각상들을 살펴보라고. 그런 다음, 집에 가서 거울로 자네 것을 찬찬히 살펴보게나.”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와 <위대한 개츠비>를 쓴 작가의 대화
P.267
글 쓰는 사람은 대부분 그 구역에 단골 카페를 정해 놓고 그곳에서는 절대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 그 카페 주소로 우편물을 받기도 했다. 애인과 밀회하는 장소로 이용하는 카페를 따로 정해 놓고, 사람들과 만날 때 이용하는 중립 카페 역시 따로 정해 놓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 자기 애인을 데려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식사하러 가는 중립 지대의 비싸지 않고 편안한 단골 식당도 많이 있었다.
> 그때나 50년이 넘게 지난 요즘이나 단골 카페에서 글 쓰는 것은 다들 똑같다. 흥미로웠던 부분 ㅎㅎ
P.292
글을 쓰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글을 쓰다가 어떤 부분을 생략할 때, 그 순간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생략해서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략된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는 부분을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