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러시아 소설이다. 그동안 이 세계를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이유가 두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어마어마한 분량(최소 천 페이지 이상)을 한 호흡으로 읽을만한 물리적인 여유가 없었고 두 번째는 ‘땡땡땡 -스키’로 끝나는 긴 이름들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읽어야만 하는 계기를 발견했으니, 바로 국립 발레단의 정기 공연이었다. 국립 발레단의 공연을 좋아해서 종종 보는 편인데, 마침 올 가을에 <안나 카레니나>를 초연으로 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하나의 감각으로만 접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감각으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도 책으로 먼저 읽고 공연을 보게 된다면 더욱 풍성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은 적중했다. 사랑해요 국발-)

언뜻 보면 줄거리는 참 심플하다. 유부녀(안나)가 미혼남(브론스키)과 바람을 폈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얼개 속에 당시 러시아의 모든 것이 담겼다. 귀족들의 정치, 종교, 사교, 학문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하는 지까지 톨스토이는 소위 리얼리즘의 끝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인들의 평소 습관대로 하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내용을 러시아어 대신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권 p.471)

이 간단한 한 문장만 읽어도 당시 귀족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다. 이렇게 톨스토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아 냈기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왜 굳이 <안나 카레니나>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작 그의 자아가 가장 많이 반영되고 이야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인물은 레빈이었다)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보다 인물들의 심리묘사 였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정수라고 볼 정도로 인물들의 심리를 낱낱이 파헤쳤다. 특히 안나와 브론스키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낸 부분(#1)과 레빈과 키티의 결혼식 장면(#2)이 인상적이었다.

#1

“기억하실 텐데요. 내가 당신에게 그 말, 그 추한 말을 입에 담지 못하게 금지시킨 것을요.” 안나는 몸을 떨며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금지시켰다는 이 한마디 말로 자신에게 그에 대한 모종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 홍조가 더욱 붉어졌다. “난 오늘 당신을 만날 줄 알고 일부러 이곳에 왔어요. 내가 온 건 당신에게 이런 일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예요. 난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는데, 당신은 나에게 어떤 죄의식을 느끼게 해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새로운 정신적 아름다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그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모스크바에 가서 키티에게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 말한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작은 불꽃이 깜박였다.

“당신은 내가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알았다. 그녀가 한 말은 스스로에게 강요한 말이지, 그녀의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 마음이 평온해지도록 해 주세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 내게는 당신이 삶의 전부라는 걸. 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 사랑…, 그렇습니다. 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윈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내 눈에는 절망과 불행, 아니면 행복, 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그는 입술만 움직여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찾기 위해 이성의 힘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 가득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1권. p.304)

#2

부제가 기도문 낭송을 마치자, 사제는 책을 들고서 약혼하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시는 영원한 하느님.” 그는 노래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이들에게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결합을 정하신 하느님, 이삭과 리브가를 축복 하시고 그들에게 당신이 약속하신 자손을 보이신 하느님, 이 당신의 종 콘스탄친과 예카체리나를 축복하시고 이들을 모든 선한 사업으로 이끄소서. 당신은 자비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이시니 우리가 당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제와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아 – 멘.” 보이지 않는 합창 소리가 다시 공기 속에 울려 퍼졌다.

‘떨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사랑의 결합을 정하신다. 이 얼마나 심오한 말인가! 이 순간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 말인가!’ 레빈은 생각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것을 느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본 순간, 그의 눈이 그녀의 시선과 부딪쳤다.

그는 그 시선에 담긴 표정으로 그녀가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도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약혼식을 하는동안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더 강해져 갔던 하나의 감정, 그것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이미 한 달 반 전에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 지난 6주 동안 그녀를 기쁘게도 하고 괴롭게도 했던 것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기쁨이었다. (2권 p.455)

#3

책바에서는 손님과 책에 대한 재미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최근에는, <안나 카레니나>를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법칙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무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첫 문장으로 비롯된 법칙이다. 자세한 설명은 하단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아름다운 외모에 밝은 성품을 갖춘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러시아 정계 최고의 정치가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녀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공허함이 있었다. 그런 그녀는 위험한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다. 하지만 전 남편과의 이혼이 이루어지지 않고 애인과 다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좌절한 그녀는 기차역 승강장에서 다가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듯 보였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공허함이 그녀를 불행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소설 속 그녀의 상황은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이야기된다.

이 소설의 첫 구절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것이 바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다. 잘되는 집안은 다들 비슷하게 근심이 없고 건강하며 화목하지만, 안 되는 집안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든 천차만별의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다양하다. 가족 구성원들이 큰 병 없이 건강하고 우애가 있으며,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금전적 고통 없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여긴다면 행복한 가정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조건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충족되면 행복한 가정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거나, 부부 중 한 명이 바람을 피워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거나, 또 자식이 나쁜 성적을 비관해 우울증에 빠졌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면 그 가정은 불행해질 수 있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좀 더 발전시킨다. 그는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예로 가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 동물이 많다. 양, 염소, 소, 돼지, 개, 당나귀 등이 가축 동물이다. 야생동물이었던 이들은 어떤 조건 때문에 가축화되었고 또 다른 야생동물은 왜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축이 되지 않았을까?

야생 후보종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동물의 식성이 너무 좋아서는 안 되고, 특정 먹이를 너무 선호해서도 안 된다. 동물이 먹을 것을 사람들이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가축은 빨리 성장해야 사육할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고릴라는 성장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동물이어서 가축이 되지 못했다. 셋째, 가축은 야생 상태가 아니라 감금 상태에서도 번식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치타와 같은 동물은 가축 동물이 불가능하다. 넷째, 회색곰과 같이 사람을 해칠 정도로 너무 포악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가젤처럼 인간에 대해 너무 겁을 먹어 민감해하는 동물은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없다. 여섯째, 같은 동물끼리 위계적 질서를 지키고, 서로 무리지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즉 동물도 사회성이 있어야 가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가축이 될 수 있고, 그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야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여러 영양소를 고루 갖춰야 한다. 단백질과 지방질, 탄수화물, 비타민 등 영양소를 넘칠 만큼 많이 섭취하더라도 미량의 특정 영양소 한두 개가 부족하면 그 하나 때문에 인체의 균형이 깨지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에 걸리고 비타민 C가 부족하면 괴혈병에 걸리고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골다공증에 걸린다. 이는 1843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리비히가 ‘식물의 생산량은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무기성분에 의해 지배 받는다’라고 주장한 최소량의 법칙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네이버 지식백과] 잘 되는 집은 뒤로 넘어져도 무사하다 – 안나 카레니나 법칙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101, 2011. 2. 28., 위즈덤하우스)

문장을 써낸 톨스토이도 멋지지만, 그 안에서 법칙으로 연결시킨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정말 멋지다. 더불어, 꼬리를 무는 탐구의 재미를 알게 해준 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그 날 자신의 비밀을 모두 말씀하시더니, 다시는 안 오신다… 난 이미 까먹었는데…)

#4

사실, 책을 읽으며 대단한 교훈을 얻은 것은 아니다. (가령,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서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라든지 등등) 그저 일종의 경외감에 휩싸여 읽은 것 같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독자의 입장보다는 저자의 입장을 생각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네이버 캐스트를 찾아봤다. 그런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감화를 받았고 새로운 영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또다른 경외감에 휩싸였다.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선순환이 이뤄지는 구조가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아직도 멀었고 더 열심히 읽고 보고 느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떠오른 한 문장.

As our island of knowledge grows,

so does the shore of our ignorance. -John archibald wheeler

“지식이라는 섬이 조금씩 커질수록,

무지라는 해안선은 따라서 늘어난다.” – 존 아치볼트 휠러

언제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으로 끝나는 독서가 아니길 바란다.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진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죠.” (3권 p.452)

그는 자기가 신념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무지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다. (3권 p.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