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참 크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품을 벗어나 홀로 사는 것도, 언젠가는 살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그 여자 그 남자의’라고 쓰여있다. (물론 나는 동성과의 관계도 성립한다고 생각) 즉, 사는 공간이란 것은 공간 자체가 지닌 물리적 조화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이와의 화학적 조화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 역시 단순히 먹고 자는 용도로써의 집이 아닌, 함께 놀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뒤로 갈수록 다소 힘이 빠져 아쉬웠지만, 관록이 느껴지는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부지런히 옮겨 적었다. 아이에 대한 부분도 꽤 있기 때문에 신혼 부부나 막 아이를 낳은 부부에게 더 추천합니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소소한 일상에서 우러나는 흐뭇한 웃음, 유머러스한 티격태격 싸움, 때로는 멍청할 수도 있는 작은 궁리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순간, 쓸쓸함을 자아내는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 먹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비추는 것 같은 느낌, 자기 자신을 슬며시 로맨틱하게 느끼는 순간, 자기 자신을 코믹하게 느끼는 순간, 뭔가 훌쩍 큰 것 같이 느끼는 순간 등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미소가 우리의 행복감을 올려준다. (p.7)

> 집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

‘집 놀이’가 일어나는 기본 조건은 딱 세 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스스로 한다. 둘째, 같이 한다. 셋째, 자기 식으로 한다.” (p.8)

나는 집이란 어디까지나 커플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을 바람직하지 않게 본다.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란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p.11)

남녀의 전쟁 역시 국가 간에 벌어지는 여느 전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영토 전쟁(공간), 경제 전쟁(소비와 저축), 문화 전쟁(취향), 역사 전쟁(인정과 보상, 과거 묻기) 등이 작용하는 것이다. (p.36)

커플이건, 친구이건, 부부이건 간에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남남이 평화적으로 같이 살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칙이 ‘오거나이즈 퍼스트(Organize first)다. 집안일과 물건 찾기에 대해서는 가족이라고 해서 남남보다 하등 다를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체계를 세우라. 물론 청소 강박증처럼 정리 강박증도 심각한 신경증이다. 관건은, 보기에 완벽하게 깔끔한 정리가 아니라 찾기 쉬운 합리적 정리 체계다. 나도 또 당신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체계를 세워보자. (p.64-65)

어떤 커플에게도 자신들만의 특별한 행사가 필요하다. 충분히 놀이로 느껴질 만한 행사가 좋다. 이왕이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 버스 정류장에 함께 걸어가는 일, 산책하는 일, 금연의 인내를 한 후에 밤에 같이 피우는 담배 한 대, 포장마차의 소주 한 병, 지하철역 앞 단골 식당의 저녁, 꼭 같이하는 마트 쇼핑, 두 강아지와의 산책? 물론 우리는 몇 주씩, 몇 달씩 몇 년씩 준비해서 인생을 사로잡을 만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행위가 된다면, 일상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더욱 특별한 특별함이 아닐까? 몸의 기억에 남아서 잊히지 않을 것이므로. 일상의 특별한 놀이를 둘만이 공유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면 그 커플은 드디어 건강한 커플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 놀이에 담겨 있는 가치란 남들이 모르는 둘만의 특별함이 될 것이다. (p.76-77)

여자와 남자가 같이 산다는 것은 살아본 집, 살고 싶은 집, 살고 있는 집의 관계에 대한 고차방정식을 같이 푼다는 뜻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이자 훨씬 더 흥미진진한 과제다. 남녀는 서로 다른 과거를 가지고 서로 같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꿈꾸면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집에 대한 궁합을 맞춰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살아봤던 집에 대한 감정을 나누고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느낌을 나누고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꿈을 맞춰보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던지, 나빴던지, 아쉬웠던지, 해보고 싶었던지, 못 해본 게 무엇인지, 꼭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인지,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대화의 목록은 수도 없이 많다. 공유하지 못했던 삶의 순간에서 공감을 찾아내는 것은 경이로운 기쁨이다. (p.231)

‘놀잇감’을 찾고 ‘놀이 친구’를 찾는 것은 인생 최고의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안 하는 삶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놀이가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일 친구’의 존재는 일의 부담을 줄여주지만, ‘놀이 친구’의 존재는 놀이의 기쁨을 배가해준다. 놀이 친구를 찾아서, 놀잇감을 찾아서 우리는 인생 내내 헤매는 것이 아닐까?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