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제목을 보면 SF로 여겨지는 이 책은 사실 일상 이야기를 다룬 단편 소설집이다. 미국 어느 시골 동네 펍에 앉아 머물다 보면 옆자리 대화를 통해 들을 만한, 하지만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열 편의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무언가 결여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연인이지만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거나, 사회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랑을 한다거나,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등 각양각색의 결핍과 상실 그리고 슬픔이 서려 있다. 더불어 읽고 난 뒤의 여운이 전반적으로 긴 편인데, 아무래도 작가가 만들어 둔 공백이 뚜렷하기 때문인 것 같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처럼 그 공백 속에 상상을 집어 넣도록 만드는 재미를 주는 작가다.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단연 좋았고, 그 외에 코요테와 코네티컷도 인상적이었다. 책 뒤표지를 보니 소설가 백수린은 이 소설을 읽고 ‘앞으로 나는 도대체 무얼 쓸 수 있을까’라는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반대로 나는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독자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기에 소설의 매력이 더 빛나는 것 아닐까. 조금 아쉬웠던 점은 표제작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의 제목. 조금 더 매력적인 제목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기억에남기고싶은문장들

나는 팔꿈치를 괴고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면 그의 얼굴은 언제나 더없이 온화하고 순해 보였고, 그러면 나는, 기숙사 방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가 언젠가 내가 결혼할 남자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남은 생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