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의 계획으로는 서른 살을 시작하는 날부터 혼자 살아보고 싶었다. 가족이 서울 근방에 사는 한, 결혼을 하기 전까지 언제 혼자 살아볼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반발감에 오히려 일정을 앞당기게 되었고, 결국 2014년 7월 12일부터 독립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서교동 라이프.

부모님이 사는 집과 멀지 않았으면 했고, 한강과 심야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 그리고 대형 마트가 가까웠으면 싶었다. 마지막으로, 소위 힙한 분위기의 동네였으면 했기에 이 동네를 선택했다.

부모님 그리고 회사 상사들, 소위 어른들이 염려했던 것은 재정적인 부분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굳이 쓸 필요없는 돈을 써야했기 때문이었다. 월세와 관리비 기타 생활비를 포함해 가족과 사는 것보다 약 천 만원은 더 쓰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천 만원은 아깝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 년 간 혼자 살아본 덕분에 내가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고, 작은 시도이지만 독립출판물로 책도 써보았으며 최근에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도 하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 동네를 몸소 겪어보면서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짧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이 동네에.

어느새 일 년이 되어 내일이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하면 마지막 밤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가,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지은 서교동 집의 닉네임은 바로 인성씨네(인성CINE)였으니까. ㅋㅋ 마지막 영화로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선택했다. 영화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로지 제목만을 보고 선택했다. 그야말로 마지막 밤과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사실 영화의 내용은 진부했다. 운명론적인 사랑을 다루는데, 전개 방식은 구식이었고 억지 또한 가득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주제가 운명적인 사랑인데 구식이면 어떻고 억지가 많으면 어떠한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봤지만, 나는 이미 영화를 보며 술을 마셨기에 잠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이면 또다른 시작이다.

안녕, 햇반에 김치

안녕, 하루만에 등장하는 먼지

안녕, 지겨운 빨래

안녕, 지갑을 얇게 만드는 월세

안녕, 딱딱한 침대

안녕, 자유 그리고 서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