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회고록 #이탈리안 #영화배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매거진 런웨이 아트 디렉터인 ‘나이젤’  그리고 <줄리 앤 줄리아>의 줄리아 남편인 ‘폴’. 두 역할은 영화 속에서 조연으로 존재했지만, 그 연기를 하는 배우는 주연 못지않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모두 스탠리 투치란 배우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가 쓴 책인 『스탠리 투치, 테이스트 (음식으로 본 나의 삶)』을 발견했다. 관심있는 배우가 쓴 음식 회고록이라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매달렸던 초고를 제출하자마자, 허기를 채우듯 바로 읽기 시작했다.

스탠리 투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고집불통 그리고 음식과 술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뼛속까지 이탈리아인의 정신을 간직한 사람이다. 특히 음식에서 타협을 거부한다. 파스타와 단백질은 함께 있어야 하지 않기에, 미트볼은 파스타와는 다른 그릇에 내놓아야 한다. 진정한 카르보나라는 관찰레만 사용해야 하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크림과 버터 따위는 넣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의 곁에 크림과 베이컨으로 카르보나라를 만드는 셰프가 있었더라면 혼쭐이 났을지도 모른다. 

음주에서도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특히 네그로니와 마티니는 시그니처 레시피가 있을 정도여서 조만간 그의 레시피처럼 만들어서 마셔볼 작정이다. 이렇게 읽게되니, 이 책은 다른 유명인처럼 대필로 쓰여진 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탈리아 음식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의 집안에서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먹는 팀파노, 그의 영화 <빅 나이트>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프리타타는 생전 처음 들어봤지만 언젠가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먹어보고 싶은 음식 레시피가 곳곳에 등장하기에 그나마 만만해 보였던 카르보나라를 도전해봤다. 그렇다. 크림과 베이컨을 사용하지 않은, 로마식 오리지널 버전이다. 음, 역시 무모한 도전이었다.  

첫 번째 결과물을 굳이 명명하자면, 자잘하게 굳은 계란이 곳곳에 흩어진 파스타였다. 결국 두 끼 연속으로 실패한 까르보나라를 먹은 뒤, 좌절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세 번째 끼니 때에는 동네 이탈리안 가게에 찾아가 시켜먹었다. 마침 손님도 우리 밖에 없길래 사장님께 이것저것 여쭤봤는데 친절하게 팁을 알려주셔서 감사했다. 일단은 알리오 에 올리오를 만들어보면서 만테까레를 연습해보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배우이기에 옛날에 존재했던 공간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등장한다. 하지만 80퍼센트 이상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언급도 함께였다. 아쉬움이 짙게 묻은 문장이다. 그렇다면, 책바는 언젠가 누군가의 회고록에 등장했을 때 여전히 운영 중인 가게라고 언급이 될 것인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쓴 『제3의 장소』라는 훌륭한 책이 있다. 그 책에서 그는,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장소 중 첫 번째는 집이고, 두 번째가 직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장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곳을 그는 ‘제 3의 장소’라고 칭한다. ‘제 3의 장소’는 바, 카페, 레스토랑 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타인들이 가벼운 상호작용을 한다. 알다시피, 특히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이후에 이러한 상호작용은 개인과 사회가 전체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번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나는 독립적인 상점, 특히 식료품 가게가 이러한 목표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독립 상점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의 쇄도로 사라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p.260)

내가 매번 파에야를 만드는 이유는 주변에 10대 아이가 있고, 이 요리 과정을 특별히 돕고 싶어 하면 왠지 굉장히 기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야외에서 파에야를 요리하면, 까마귀나 원숭 이가 빛나는 물건에 이끌리듯 사람들이 점점 주변으로 모이게 된다. 쌀이 팽창하고 색이 짙어져 쌀알 하나하나에 재료가 스며들고, 조개가 천천히 입을 열고, 새우가 투명한 청백색에서 불그스 름한 핑크색으로 변해가며 생기는 느린 변화를 함께 얘기 하며 주시한다. 천천히 요리되는 많은 음식 대부분은 오븐 안에 감춰져 이가 완성된 상태로 나타나지만, 파에야는 사람을 요리 과정으로 초대한다. 숨길 게 하나도 없다. (p.271)

# 해야할 것이나 하고 싶은 것

1. 그가 제작한 <스탠리 투치, searching for Italy> 보기

2. 그가 감독한 <빅 나이트> 보기

3. 이탈리아에 가서 전통 음식 마음껏 먹기 (그동안 두 번이나 갔는데 뭐 한거냐)

4. 파스타 하나 정도는 손님에게 내어드릴 수 있을 만큼 연습해보기 

5. 그의 레시피대로 네그로니와 마티니 만들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