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보통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정말로 사소한 이유 만으로 좋아하게 된다. 이처럼 내가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글이 여러 상을 타고 유명하고 글솜씨가 뛰어나서가 아니였다. 그저 우리학교 선배님이고 고양시에 사는 주민이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래서 선택한 소설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다섯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고, 신기하게도 세 시간에 걸쳐 다시 그 책을 읽었다. 하루도 안되어 연속으로 두 번 읽게 한 책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때로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문장이 난해하고, 때로는 잘난척한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이고,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이상하게 그의 책은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의 다른 책이 읽고 싶어졌다.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신간인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나는 사랑연애 이야기에는 언제나 귀를 쫑긋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ㅋㅋ) 제목에 있는 ‘여자친구’란 단어에 끌렸다.

몇 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프로 소설가’ 라고 스스로 칭하는 그의 소설집답게 온갖 생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이런 소재가 떠올랐을까? 라고 느껴질 정도다.

재밌게 읽었던 소설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달로 간 코미디언’ 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특별했다.

익숙한 동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서 더 몰입을 하며 읽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는 일산이었고 그중에서도 호수공원 그리고 메타세쿼이아였다. 특히 글 중간에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불빛….’ 이라는 문장은 얼마 전 땀흘리며 호수 한 바퀴씩을 달렸던 그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덕분에 내가 주인공과 같은 느낌도 들었고, 작가가 주인공인듯한 자전적 소설의 느낌도 들었다.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1.

“12월 말이었어요. 눈을 밟으며 계곡을 올라가다보면 종종 어디로 가야만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 위에 가만히 서 있는 토끼와 마주치곤 했습니다. 보이는 모든 곳이 길이었는데도 토끼는 길을 잃었더군요.” (p.28)

> 20대 = 靑春

무엇을 하든 파릇파릇해야 할 20대. 이래야 하는데, 아니 이래야만 하는 20대인데, 요즘 주위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취업시장이 수요는 적은데 과잉공급이니, 나를 포함한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그리고 20대가 시작됨이 동시에 오직 그것 하나만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보이는 모든 곳이 길인데도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이다. 조선일보 WHY에서 ‘광고일을 하고 있는 이제석’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한국 학벌주의가 마음에 들지않아 미국 학교로 떠났다. 또 미국 학교가 마음에 들지않아 미국 사회로 떠났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는 과감히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났다.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은 이런 결단성이다. 제발 길을 잃은 토끼처럼 되지 말자. 너는 정말 너가 하고싶은 일을 해야만 해.

2.

우리가 트럭에 붙은 불꽃을 지켜보느라 속력을 내지 못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빨리 가라는 뜻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그 때 내가 해피에게 말한다. “이제 가요, 해피. 어서 가요. 저 불은 곧 꺼질거야.” 내 말에 해피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해피의 자동차는 여전히 속력을 내지 못한다. 해피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p.32)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쨋든 인생은 서로 물로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p.63)

3.

“요즘 들어서, 살아오는 동안 안 하고 넘어간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청년은 아직 이게 무슨 기분일지 모를 거야. 한 일들은, 그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이런 만화를 본 적 있다. 어느 노인이 주인공에게 묻는다. “당신이 죽을 때, 못먹은 밥이 생각나겠나, 아니면, 못이룬 꿈이 생각나겠나?” 어떤 일의 시도는, 성공이 아름답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p.79)

4.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81)

5.

이렇게 거대한 도시에 사는 한, 하루에 두 번씩 평생 택시를 탄다고 해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같은 택시를 탈 수 없는데, 그런데도 때로 우리는 원래 만나기로 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또 사랑에 빠지고, 코발트블루에서 역청빛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광활한 밤하늘 속으로 머리를 불쑥 밀어넣는 것과 같은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이 도시와 청춘의 우리가 너무나 닮아 잇기 때문이리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극한의 절망과 다른 선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완강하고도 그만큼 멍청한 확신 사이를 한없이 오가면서 그 무엇도 아닌 존재에서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 시시각각 변하는, 그러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얼굴을 지녔지만, 결국 단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얼굴들. 그와 비슷하게 이 도시에서는 깊은 밤의 퇴근길 한강을 따라가면서 지친 얼굴로 바라보는 밤의 또렷한 풍경과 멀리 내몽고의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먼지로 뿌옇게 뒤덮인 낮의 풍경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 무엇도 아닌 존재에서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 (p.107)

>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글

멈춰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나이, 이젠 좀 솔직해져도 괜찮은 나이, 서른 살이 된다는 건 정말 그런 의미인 것일까? 서른 살, 나에게는 특별한 나이다.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故 김광석 님의 ‘서른 즈음에’ 때문이랄까. 이상하게도 난 어렸을 적부터 제목만으로 이 노래를 좋아했고 사실 서른 살이 되는 동시에 처음으로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버틸 수가 없더라. 어느 날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헤쳤다. 정말 문자그대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데 서른 살 들으면 얼마나 눈물이 나올까… 그래도, 정확히 서른 살이 시작되는 2015년 4월 12일에 이 노래를 들어야 겠다. 멈춰서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솔직해지자고 다짐하면서.

6.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랑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막상 별다른 이유 없이 헤어지고 나니 왜 지구는 자전 따위를 해서 밤이라는 걸 만들어내 나를 뜬눈으로 누워 있게 만드는지 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p.239)

> 사랑하고 싶다.짝사랑말고, 미적지근한 사랑말고, 조건보는 사랑말고, 오직 그 사람 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