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책이 사회의 풍조를 이끌던 시대가 있었다. 책으로 인해 유행어가 탄생했고, 때로는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익숙한 사례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일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던 젊은이들은 그를 따라 자살했는데, 그 수가 꽤 많았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통해서 ‘보바리즘(Bovarysme)’이란 용어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명명한 보바리즘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보바리즘이란 일종의 ‘환상’이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은 엠마 보바리로, 그녀는 어릴 적에 수도원에서 잠시 살았다. 그때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다. 하필이면, 소녀에게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내용의 책 뿐일더러 저자 역시 선망의 대상인 귀족 계급이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레 환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엠마는 시골 의사인 샤를르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엠마가 아닌, 보바리 부인(마담 보바리)이라고 주위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한다. 슬프게도, 그녀가 앞으로 사랑할 대상은 그가 아니었지만.
그녀가 사랑의 감정으로 교감을 나눈 사람은 이름 모를 자작과 레옹 그리고 로돌프였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자작은 남성미를 마음껏 드러내며 그녀와 함께 춤을 춘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레옹은 부드럽고 섬세한 매력을 가진 남자였다. 비록 첫 만남 때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헤어졌지만, 이후 다시 만났을 때는 먼 거리를 오갈 정도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 때 남편 샤를르는 내막은 모른채 이들이 더 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그리고 로돌프에 이르러 그녀의 사랑은 절정에 달한다. 플로베르는 이들의 만남의 순간부터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그는 농업 경작인 행사에서 엠마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로돌프와 연사들의 연설을 엇갈려 배치하며 긴장감을 높혔다.
“전체 경작 우수상!” 하고 회장이 외쳤다.
“가령, 아까 댁에 갔을 때…”
“수상자, 캥캉프와의 비제 씨.”
“이렇게 같이 있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상금 칠십 프랑!”
“저는 백 번도 더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뒤를 따라와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퇴비 상”
“그리고 이대로 오늘밤도, 내일도, 그리고 또다른 날에도, 아니 한평생 여기에 있고만 싶습니다!”
“아르괴이유의 카롱 씨에게 금메달!”
“어떤 사람과 함게 있을 때에도, 이렇게 완전한 매혹을 맛본적은 없었으니까요.” (p.216-217)
불타오를 듯한 긴장감으로 만난 이들은 불륜도 뜨겁게 저질렀다. 특히 마차를 타며 온 도시를 휘젓는 장면은 타이타닉의 마차 씬이 떠오를 정도이다. 이쯤되면 늘 헌신하는 남편 샤를르가 불쌍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녀가 그와 작은 교감이라도 나눴을 때가 없진 않았다.
시골 풍습에 따라 그녀는 뭘 좀 마시라고 권했다. 그가 사양하자 그녀가 다시 강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웃으면서 자기도 마실 테니 리큐어를 한잔 마시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찬장에서 퀴라사오 병을 꺼내오고 손을 뻗쳐 조그만 유리잔 두개를 집어다가 하나에는 가득히, 다른 하나에는 살짝 붓는 척만 하고는 잔을 맞부딪친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거의 빈 잔이었으므로 그녀는 마시기 위하여 몸을 뒤로 젖혔다. 그렇게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내민 채 목을 길게 늘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웃으면서 예쁜 이빨들 사이로 혀끝을 내밀어 컵 밑바닥을 몇 번씩이나 날름거리며 핥았다. (p.39)
안타깝게도 이 장면은 이들이 결혼을 하기 전이다. 시골 의사인 샤를르는 엠마의 아버지인 루오를 치료하러 방문하였고, 그러던 중 퀴라사오(앞으로 큐라소로 부르겠다)를 엠마와 나눠마시며 첫 교감을 나눈다. (그 와중에도 돋보이는 엠마의 탐욕…!)
큐라소(Curaçao)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네덜란드 자치령의 작은 섬이다. 1527년,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이 섬을 차지한 뒤 자국의 발렌시아 오렌지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섬의 기후와 맞지 않아 달콤한 발렌시아 오렌지는 초록색 껍질과 다소 쓴 맛을 가진 라라하(Laraha) 오렌지로 변형되었다. 여기서 큐라소 리큐어는 라라하 오렌지의 껍질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술이다. 원래는 투명한 색이었으나, 인공색소를 사용하여 푸른색을 포함한 다양한 색소를 띈다. 알코올 도수는 종류에 따라 20도에서 40도로 다양하고, 시럽이 더해졌기 때문에 대체로 달콤한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리큐어의 원재료가 쓴 맛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찌보면, 큐라소는 이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겉은 달콤하지만, 진실은 쓰디쓰다는 것을.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p.64 – 65
아마도 그녀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속내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뜬구름처럼 변화무쌍하고 바람처럼 회오리치는 이 알 수 없는 불안을 뭐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그녀는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따라서 기회도, 용기도 없었다.
p.158
중류층 마누라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름이 똑바로 잡힌 옷은 산란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그토록 정숙해 보이는 입술은 마음의 고뇌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려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는 즐거움을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가 직접 눈앞에 보이면 그 명상의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가 앞에 오면 감동이 사라지면서 오로지 커다란 놀라움만이 남았다가 어느덧 그것도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p.161
‘아아! 그렇군요.’ 하고 펠리시테가 말을 받았다. ‘마님은 게린느하고 똑같네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디에프에서 알았던 폴레의 어부 게렝 영감님의 딸이었죠. 표정이 어찌나 슬퍼 보였는지 이 아가씨가 그 집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마치 그 집에 초상이라도 난 걸로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아가씨 병은 꼭 머릿 속에 안개가 끼어 있는 거 같은 증세였는데 의사 선생님도 신부님도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어요. 병이 심해지면 혼자서 바닷가에 나가서는, 세관 관리가 순회하면서 보니까, 파도가 밀어닥치는 자갈 위에 뒹굴면서 울더래요. 그렇던 것이 결혼을 하고 나자 깨끗이 나았다는 소문이더군요.’
‘하지만 내 경우는’ 하고 엠마는 대답했다.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생긴 병인걸’
p.226
‘엠마…’
‘선생님!’ 그녀는 조금 물러서면서 말했다.
‘그것 보세요’ 그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오지 않으려 했던 내 생각이 옳았잖아요. 이 이름, 내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이름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는데 당신은 안 된다고 하시는군요! 보바리 부인! … 모두들 당신을 그렇게 부르지요! … 사실, 그건 당신 이름이 아니죠! 다른 남자의 이름인걸요!’
그는 되풀이했다.
‘다른 남자의!’
p.389
어느 날 두 사람은 이 세상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녀가 문득 (레옹의 질투심을 시험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 옛날에 레옹을 사랑하기 전에 어떤 다른 남자를 사랑한 일이 있다고 말해 버렸다. ‘당신만큼 사랑한 건 아니고!’하고 그녀는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딸의 목숨을 걸고 맹세했다.
-> 물론 아무 일도 있었고, 딸의 목숨을 원래부터 중요하게 생각도 안했음. 여기서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