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은 없지만, 출간하는 작품마다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공감하게 만드는 책. 처음에는 그냥 매력적인 글을 쓰기 위한 책인줄 알았으나, 비단 소설가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 자체를 임하는 자세와 가족(그 중에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과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옮겨 적느라 고생이 많았다. 내가 받아들인 핵심 메시지는 ‘일단 써라’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영감을 많이 받았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p.74

우리는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만났다. 그리고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은 1969년 가을에 시창작 실습을 할 때였다. 이때 나는 4학년이었고 태비는 3학년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던 한 가지 이유는 그녀의 시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기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섹시한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가터로 고정시키는 실크 스타킹을 신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p.88-89

내가 햄프던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되면 뉴 프랭클린 세탁소에서 빨래를 하던) 그 2년 사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아내였다. 나는 폰드 스트리트의 셋집 현관이나 허먼의 클래트 로드에 있던 임대용 트레일러의 세탁실에서 소설을 썼는데, 만약 아내가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면 나는 용기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비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놓고 당연시할 수 있는 요소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그녀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주었다.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어놓은 처녀작을 볼 때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도 나 같은 심정이었구나.’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p.147

싫어하는 말들은 나에게도 있다. 나는 ‘그거 정말 쿨하네(That’s so cool)’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구석에 세워놓아야 하며 그보다 훨씬 더 역겨운 ‘지금 이 시점에서(At this point in time)’나 ‘하루가 끝날 무렵에(At the end of the day)’ 따위를 쓰는 사람은 저녁도 먹이지 말고 (또는 글을 쓸 종이도 주지 말고) 그냥 재워야 한다고 믿는다.

p.148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동태는 안전하다. 골치아픈 행동을 스스로 감당할 필요가 없다. 빅토리아 여왕의 말을 빌리면, 주어는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영국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첫날밤을 맞는 딸에게 해주었다는 충고)

p.15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붕 위에서 목청껏 외치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다.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틀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 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 그대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 으헉!! 늦어버린 것이다.

p.185-186

나의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오전에는 그때그때 새로 진행중인 일을 한다. 즉 집필중인 작품 말이다.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편지를 쓴다. 저녁에는 독서를 하고 가족과 텔레비전의 레드삭스 팀 경기를 보거나 미룰 수 없는 수정 작업 등을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은 주로 오전인 셈이다.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 등장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서술도 예리함을 잃어 둔해지고 이야기의 플롯이나 전개 속도에 대한 감각도 점점 흐려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의 흥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집필 작업이 ‘노동’처럼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죽음의 입맞춤과도 같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오전에 글을 쓴다. 오전에 글을 쓰는 이유는 규칙적인 삶을 추구하고 타인들과 삶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 있지 않을까?

p.188

간혹 나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을 때 (터무니 없는 발상이지만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이만하면 괜찮은 대답이다. 질문을 적당히 물리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진실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고 또한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엄살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자신 만만한 여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껏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p.189

장소는 좀 허름해도 좋은데 (내가 이미 암시했듯이 어쩌면 ‘허름해야’하는데), 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딱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문으로, 여러분은 이 문을 닫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결심이 진심이라는 것을 온 세상과 자신에게 공언하는 일이다.

p.197 소설 속 세계란

이 세계는 안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p.218

적확한 직유법은 낯선 사람들 틈에서 옛친구를 만난 것은 같은 기쁨을 준다. 서로 무관한 두 사물을 – 식당과 동굴을, 거울과 신기루를 –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낯익은 사물들을 참신하고 생동감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물론 ‘동굴처럼 어두컴컴하다’는 그리 매력적인 비유가 아니다. 전에도 들어보았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딱히 상투적인 문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좀 게으른 표현이다.) 설령 비유가 별로 아름답지 못하고 단순히 사물을 좀더 명료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치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여기서 일종의 기적에 동참하는 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69

그런데 과연 모든 의견이 똑같은 무게를 가질까? 내 경우에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장 주의깊게 경청하는 사람은 태비인데, 그것은 내가 애당초 그녀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내가 감동시키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p.328

결국 마지막 판단을 내린 사람은 (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흔히 그랬듯이) 내가 아니라 태비였다. 나도 가끔은 그녀에게 그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왜냐하면 결혼 생활의 혜택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여 머뭇거릴 때 거뜬히 판가람을 내준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331

어쨌든 시작은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p.332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 –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 –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 – 이 부분이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 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