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인 오십 대 중반의 어떤 남자가 피아노를 다시 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의 직업은 영국을 대표하는 신문인 가디언의 편집장이며, 도전하는 곡은 모든 피아니스트가 긴장하며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이다. 약 일 년의 준비 기간동안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최소 이십 분 이상 연습하고 (물론 너무 바빠서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만날 때마다 (그 때마다 이 남자의 직업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발라드 1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요즘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물으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이야기한다. (사실 묻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셀프로 이야기합니..) 정확히 말하면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손끝에서 나온 연주다. 처음 발라드 1번에 대한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너무 신기했는데, 이 책에는 저자 뿐만 아니라 발라드 1번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곡을 들으면, 누군가는 19세기의 걸작 회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관뚜껑에 못 박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한다. 십분 공감한다. 굳이 대중가요를 연결시켜보면 왠지 모르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연상된다. 위키리크스 사태, 동일본 대지진, 아랍의 봄,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폐간이 몰렸던 그 해에 불굴의 의지로 도전을 이뤄낸 그에게 경의를.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이 많아 손이 바삐 움직였다. 피아노에 관심있거나, 저널리즘 업계에서 일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다시, 피아노”를 말할 수 있기를.
그외
* 코다: 원래 음악 용어로 한 작품 혹은 악장의 끝에 위치하여 만족스러운 종결의 느낌을 선사하는 부분이다. 문학 비평에서 이 용어는 에필로그(epilogue)와 바꿔 쓸 수 있고, 이는 프롤로그(prologue)와 대응된다.
*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봐야겠다.
* 아침 20분 마다 꾸준히 연습
* 어렸을 때의 경험이 지금의 그와 이어짐 (p.220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연결됨)
* 가디언 편집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적 피아니스트와의 만남
* 녹음 기술의 발달의 부작용 – 정확한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만연. 연주자의 느긋한 마음이 불가능해짐.
* 악기를 연주해지고 싶어짐 + 어디서든지 조인이 가능한 실내악단을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인간의 장수가 그들 종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면 과연 사람이 태어나서 일흔, 여든까지 사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시기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시기여야 한다. 그저 인생의 오전에 들러붙은 처량한 부속물 정도로 전락해서 안 된다는 말이다.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 생활에 적응하며, 자식을 생산하고 돌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오전을 보낸다. 이것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삶의 오후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오전을 지배했던 자연의 법칙이 각자의 영혼에 일정 정도 피해를 입혔음을 깨닫는다.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가족을 꾸려 자녀를 기르는 일은 오직 자연 법칙에 따른 일이며, 그것 자체를 문화라고 부를 순 없다. 문화는 자연의 섭리를 넘어 존재한다. 어쩌면 문화는 인생의 하반기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p.16-17, 카를 융의 말)
브렌델은 오로지 피아노만을 위해 곡을 쓴 유일무이한 작곡가가 바로 쇼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쇼팽의 경우에는 음악이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비롯되고 형성된다.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에서는 교향악의 면모나 합창곡의 면모 따위를 어렵잖게 느낄 수 있지만, 쇼팽이 쓴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오로지 피아노 음악이었다는 말이다 (p.27)
쇼팽이 쓴 네 곡의 발라드 중 첫 번째 작품은 아마도 1834-1835년쯤에 작곡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작곡가는 스물네 살 청년이었다. 1830년 고국 폴란드가 러시아의 압제에 항거해 봉기한 어수선한 시국에 바르샤바를 떠나 음악의 중심인 빈으로 갔지만 아홉 달 동안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는 바람에 낙심하고 다시 짐을 싸 대도시 파리로 건너와 살던 중이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알면 <발라드 1번>이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망명객의 작품임을 알라는 것이다. 폴란드의 민족주의가 문화라는 배출구를 발견한 혁명적 시기의 작품이라는 소리다. 이를테면 음악의 경우에는 민요적인 요소를 도입하거나 민속적인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얻는 식으로 그러한 열망을 표출했다. 바르샤바로 돌아갈 길이 막힌 쇼팽은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를 쓰면서 망향의 한을 달랬다. (p.28)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는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아마레(Amare)’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p.115)
우리 아마추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프로 음악가들을 감동시킬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청중마저 우리의 연주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실한 준비, 약간의 용기와 음악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116)
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통해, 또 누군가는 조깅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은 헬스클럽에서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게는 아침 20분의 피아노 연습이 그와 같은 효과를 보장하는 행위인 것이다. 연습을 하고 집을 나서는 날은 하루동안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해나가는 느낌인 반면, 연습을 건너뛴 날은 업무가 그만큼 더 고단하다. (p.136)
이번 특종은 이른바 ‘마멀레이드 드로퍼(Marmalade Dropper)’다. 아침 식사 도중에 읽으면 십중팔구 잼을 바닥에 흘릴 정도로 충격적인 기사란 소리다. (p.420)
“프로페셔널이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들어줄 만한 연주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니까요.”
그러니까 시차가 적응되지 않아 눈이 감기더라도, 유행성 독감에 걸렸다손 치더라도, 어쨌든 무슨 이유에서건 기분이 별로더라도 인상적인 연주를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프로라고 하는 것이고, 바로 그 점이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는 것일 테다. (p.532)
# 발라드 1번에 대한 이야기
마터호른 정상에 대한 홉스의 묘사는 <발라드>의 정점, 즉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들마저도 식은땀에 젖은 채 잠에서 깨게 만든다는 흉포한 코다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읽히기도 한다. “한쪽 면은 바윗돌밖에 없는 절벽이고, 다른 쪽은 눈으로 뒤덮인 가파른 경사면이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절벽 끝을 둘러싼 발자국 몇 개가 전부다. 오른발이 미끄러지면 스위스로, 왼발이 미끄러지면 이탈리아로 굴러 떨어진다.” (p.76-77)
쇼팽의 발라드를 듣는 경험은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19세기 걸작 회화를 감상하는 미적 경험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꼼꼼히 매듭지은 수많은 세부가 작품 전체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가로막지 않는 그런 그림 말이다. (p.94 <쇼팽 주법 How to play Chopin, 레기나 스멘지아카>)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특징이 대단히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종착역이 되고, 거기서 같은 방향으로 더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202)
발라드를 처음 배운게 몇 살 때였냐고 물으니 역시나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큰 차이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열세 살 아니면 열네 살 때쯤이었습니다.”
“10대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곡인가 봅니다?”
“그러게요.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곡인데 말이죠!” (p.352-353)
“엄청난 낭만성을 담은 곡이지요. 균형 따위는 안중에 없이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한 곡이에요. 이 시대 음악 예술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비견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는데, <발라드 1번>은 아마도 그 정점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행복감과 비감이 있고, 관 뚜껑에 못을 박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요.” (p.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