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 용기를 내서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첫 번째로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올 때 큰 계산을 하지 않았다. 한 달만 기다리면 나왔을 인센티브를 고려하지 않았고, 부모님께 먼저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서 이것이 얼마나 재정적으로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인지도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들어 조금 흔들렸던 것 같다. 내가 오기로 도전한 것인가, 나는 과연 잘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
#2
지난 주 도쿄에 벤치마킹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약 1주일 동안 부동산을 살펴보았다.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망원동부터 시작해서 염리동, 서교동, 성산동, 신수동, 대흥동, 서촌, 성수동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딜레마가 발생했다. 평수가 조금이라도 크면 (약 10평 정도) 월세가 비싸고, 또 작으면 (약 7-8평) 원하던 공간 구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또 권리금, 유동인구, 집과의 거리, 역세권, 동네 상권 등을 모두 생각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공간은 책과 술이 결합된, 결코 흔하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롤모델이 없었다.
#3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을 읽지 않는다. 도쿄에 갔던 북카페(츠타야 서점 포함)에서도 사람들은 이 공간을 책을 읽기보다는 일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책이라는 것은 읽기위한 수단이 아닌 그저 인테리어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최근 부동산을 알아보면서 계속 흔들렸던 것 같다. 내가 만들 공간에 대한 굳건한 정의가 필요했다. 결국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까지 이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 거의 없을 (아마도 없을) 공간을 처음으로 만들고 싶었고 두 번째로 이런 공간이 있다면 나는 종종 이용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은 북바(Book Bar)다. 북카페(Book cafe)는 이미 많고 최근에는 서점에서 맥주까지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정 술과 책을 결합한 공간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나는 술과 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4
술과 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이러하다.
첫 번째로, 술 한 잔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추리 소설인 <기나긴 이별>에서는 칵테일 김렛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김렛을 이야기하고, 김렛을 이야기하며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러면 책이 더 재미있고, 술이 더 맛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술 한 잔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왜 책을 읽을 때 꼭 커피를 마셔야 하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물론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해가 필요한 실용서의 경우 알콜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이라면 오히려 알콜이 더욱 책에 몰입을 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알콜을 찾고 싶었고, 그러한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세 번째로, 술과 관련된 책도 판매하고 싶다.
김렛을 마시는 사람에게 <기나긴 이별>을 판매할 수 있고, 피나콜라다를 마시는 사람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책을 읽을 때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모히또와 다이키리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헤밍웨이의 책을 판매할 수도 있지 않을까?
#5
위의 세 가지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은 이러하다.
첫 번째로, 최소 10평은 되어야 하겠다. 너무 좁으면 그냥 바가 되어버린다. 책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한. (사실 이 점 때문에 가장 많이 고민을 했다. 결국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책을 안 읽을 수 있는데, 괜히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두 번째로, 엄청나게 붐비지는 않지만 집에 들어가는 길가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한 잔을 할 수 있거나, 집에 있다가 책 한 권 들고 나올 수 있는.
세 번째로, 위의 두 조건이 만족했을 경우 월세가 100만원이 넘어서는 안 된다.
이래서 어려운 것이다.
#6
내일부터 다시 힘내자.
흔들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