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오로라 원정대 (#3. 오로라 헌팅을 떠나다)

작성자
J
작성일
2018-11-09 12:53
조회
652
오로라 투어 - Day 3



오로라 헌팅(Aurora hunting)이란 단어가 있다. 이름 그대로 오로라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한다. 이틀 동안 오로라 빌리지에서 마냥 기다렸다면, 마지막 날은 조금 더 능동적으로 보고 싶었다. 어제는 첫 번째 날보다 더 뚜렷한 오로라를 만나긴 했으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빌리지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들이 오로라 헌팅 프로그램을 소개해줬고 당일 극적으로 조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P 덕분!)



16인승 밴으로 우리를 인솔한 사장님은 오로라 왕이라고 부를 만했다. 스스로 논문까지 찾아가며 공부했다면서 가장 기본적인 정보부터 전문적인 지식까지 이동 내내 알려주셨다. 이 분이라면 이번 여행의 모든 운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떠나는 오로라 헌팅은 소규모로 진행하기 때문에 신청자의 숙소에 일일이 찾아가 픽업한 뒤 오로라가 뜰 만한 지역을 향해 이동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친구들끼리 오거나 혼자 온 사람들이었는데 마지막에 탑승한 이들은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남편에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는데, 이 분도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몇 초 뒤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혹시….?”



(확률적으로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캐나다 어느 한적한 시골의 오로라 투어 밴에서 만난 사람은 한 때 종종 오시던 책바 손님이었다. 서로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못 본 사이에 그분은 수염이 생겼고 나는 머리가 길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퇴사 후 미국으로 길게 여행을 갔다가 틈을 내 오로라를 보러 오셨단다. "가족과 함께 오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라며 말을 건넸으나 “아시면서. 하하."라는 대답이 날아왔다. 옆에 앉은 부인 또한 미소를 지으며 비슷한 장난 섞인 말을 했다. “친구와 오는 게 최고죠.” 그 모습조차 좋아 보였다.



“자, 거의 다 왔으니 내릴 준비 하세요. 다행히 오늘은 제대로 보실 수 있겠네요.”



사장님의 말을 듣자마자 옷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히트텍을 포함해 총 다섯 겹을 입은 상태였다. 챙겨 온 패딩이 적당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 안에 겹겹이 입어서 열기를 간직해야만 했다. 며칠 전 캐나다 구스와 무스 너클 패딩을 구매한 L과 P는 표정만 봐도 따뜻해 보였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러웠다. 이내 차가 멈췄고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장 그대로,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우와….!"



우리는 모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국적,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오로라 앞에서는 모두 아이가 된다. 각자가 감탄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방방 뛰었고, 누군가는 “미쳤다."를 연발했으며 감정이 복받친 이는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동시에 카메라 세팅을 했다.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 매개체도 남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로라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신부의 면사포 같기도 했고, 때로는 휘몰아치는 파도 같기도 했다. 눈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IT 기기에 익숙한 K가 곁에서 세팅을 도와줬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소를 나눴다. 분명 우리는 인생에서 몇 없는 경험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로라는 밀당이 확실했다. 틈틈이 사라지곤 했는데, 그때 우리는 차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컵라면과 함께 각자 챙겨 온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싶었다. 특히 뜨거운 립톤 홍차에 크라켄 다크 럼을 타서 마셨는데, 더 이상의 호사스러움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하루 종일 물을 많이 마신 탓이었다. 사장님께 슬쩍 물어보니, 미소와 함께 대답하셨다.



“여긴 화장실이 없어요. 저 구석에 가서 조용히 일 보고 와요.”



그렇다. 지금 나는 자연 한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때마침 오로라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도 힘찬 모습이었다. 덕분에 오로라를 바라보며 옐로 나이프와 기운을 나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변이 되리라. 친구들에게 다가가 상기된 표정으로 자랑 아닌 자랑을 하니, 다들 나도 나도 하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다른 공통점을 하나 더 가지게 됐다. 오로라를 보며 오줌 눈 녀석들.







오로라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칠흑 같은 하늘을 수많은 별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별자리 왕이기도 한 사장님은 일일이 손으로 짚어가며 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던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가장 반짝이던 별 베가, 틈틈이 떨어지던 별똥별 등등. 2010년 사하라 사막에서 별을 봤던 이후로 가장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오로라와 달리, 별들은 차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덩달아 사방이 고요해지자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우리는 에어팟을 나눠 끼며 적재의 '별 보러 가자’와 안녕바다의 ‘별빛이 내린다’ 그리고 Lianne La Havas의 ‘Starry Starry Night'를 차례로 들었다. 노래 가사처럼 별빛이 샤랄랄라 빛나는 밤이었다.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시시각각 형태를 바꿔가며 움직이는 오로라, 쏟아질 것처럼 하늘을 수놓은 별들,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최근 몇 달 동안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듯이 살아봤자 결국 자연 앞에 서면 한낱 미미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돌아가서 다시 삶에 치이다 보면 서서히 희미해지겠지만, 한 번 되뇌었다. 인생은 짧으니 현재를 소중히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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