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오로라 원정대 (#2. 오로라 빌리지의 첫 날)

작성자
J
작성일
2018-11-06 23:58
조회
636
오로라 투어 - Day 1

캘거리에서 옐로나이프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급작스럽게 내린 눈으로 비행기 정비가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것이다. 특히 탑승 후 이륙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과연 오늘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라고 의심될 만큼 길게만 느껴졌다. 창 너머로 보이는 정비 작업을 볼 때면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취소를 바랄 정도였다. 약 오십 명을 수용하는 작은 비행기의 동력은 양 날개에 달린 프로펠러였는데, 이 부분이 얼었는지 부동액으로 보이는 액체를 계속 붓는 것이 전부였다.

옆에 앉은 덩치 큰 캐나다인 역시 초조함이 엿보였다. 내 몸무게의 두 배는 되는 듯해 보이는 그는 뒤척일 때마다 살이 푹 하고 맞닿았다. 평상시에는 타인의 살이 내 살에 닿는 것이 유쾌한 기분이 아닌데 이때는 오히려 푹신한 살로 인해 일종의 안정감까지 느껴져 좋았다. 하지만 대기 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불안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혹시 비행기가 뜨더라도 새가 프로펠러 쪽으로 달려들어 추락하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죽지 않는 것인지 옆에 앉은 캐나다 친구에게 최대한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온갖 상상의 날개를 폈을 무렵,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추가로 대기했던 한 시간 반 탑승 후 이륙까지 한 시간 반, 총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두 시간 반 동안의 비행은 상대적으로 순탄한 편이었다. (그렇다. 비행시간보다 지체 시간이 더 길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기류에 쉬이 흔들리긴 했지만, 이미 직전에 긴장을 가득한 상황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과연 오늘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여부였다.

옐로 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신청했던 프로그램은 오로라 빌리지에서 하는 투어였다.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가 자주 뜨는 스폿에 조성된 상업 공간으로, 작은 레스토랑과 기념품 숍 그리고 베이스캠프라고 볼 수 있는 티피(인디언들이 거주용으로 사용했던 텐트)로 이루어졌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다운 타운에서 전용 버스를 탑승해야 하는데,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십 분도 채 되지 않았다. 밤 아홉 시 사십 분에 호텔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삼십 분이 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방에 들어가 짐을 둘 시간은커녕 체크인할 시간도 부족했다. 심지어 방한을 위한 옷도 캐리어 안에 담겨 있었다. 오로라를 관측하는 시간은 보통 밤 열 시부터 늦은 새벽까지인데 상상도 못 할 만큼 춥다고 들었다. (괜히 이 나라에서 캐나다 구스가 탄생한 것이 아니다) 10월 초이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단다. 그래서 우리는 체크인을 하며 동시에 구석에서 옷도 갈아입었다. 누가 속옷을 보든 말든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이렇게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적이 (논산 훈련소를 제외하고) 있었던가.

간신히 버스에 탑승하고 오로라 빌리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둑어둑해져 도착 전에는 전조등의 희미한 빛을 제외하곤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감싸고 있었다. 가는 동안 가이드가 오로라 빌리지에 대한 설명 및 규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응….?"

캐나다 북서부의 한적한 시골 숲 속에서 듣는 모국어라니. 알고 보니, 오로라 빌리지를 찾는 이들의 높은 비율을 일본인과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어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두 나라 국적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영어로 듣는 설명보다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어...!

오로라 빌리지는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곳이었다. 이따금씩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을 뿐 전체적으로 침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로라를 볼 수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황홀한 표정으로 이 기분을 전달할 수 있을 거야. 아, 삼일 내내 오로라를 보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보통 오로라는 구름보다 높게 분포한다. 그 말인즉슨, 날씨가 흐리면 오로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보다 캐나다의 옐로 나이프가 좋은 이유는 날씨가 다소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은 구름이 있는 날이었다. 하늘이 어두컴컴한 이유가 다 있었다. 가이드는 걱정하는 우리를 티피 안으로 안내하며 말을 건넸다.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라고.

티피 안은 아늑했다. 구석 안쪽에는 장작을 태우며 온기를 더해주는 난로와 편안히 앉아 대기할 수 있는 의자와 책상이 있었다. 앞에 있는 책상에는 보온병이 서너 개 있었는데, 커피 혹은 코코아를 타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떠오르는 생각. ‘아, 여기서 라면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참고로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 가면 신라면을 판다. 그리고 날개 돋친 듯 팔린단다.) 안을 둘러보니 우리를 포함해 약 열다섯 명이 있었다. 모두 한국인이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일부러 같은 나라 사람들을 한 곳에 배치한 것 같았다. 부모님 뻘 되는 분들부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들까지 성별과 나이는 골고루 있었다. 하지만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오로라를 만나고 싶다.

그때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 오로라인 것 같아요….!”

너 나할 것 없이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어떤 사람은 급하게 나가다가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갑자기 개들이 컹컹! 하고 짖기 시작했다. 음향 효과가 더해지자 무슨 축제라도 시작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길게 늘어선 하얀 물체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저것이 오로라인가...? 일단 챙겨간 카메라를 삼각대로 고정하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ISO 1600, F값 2, 셔터 스피드 15초’ 가이드에게 듣자마자 수학 공식 외우듯이 카메라에 세팅한 수치다. 하얀 물체는 옅어졌다가 이내 사라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른 방향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마치 생명체 같았다. 우리는 그때마다 카메라 방향을 돌려가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분명 눈으로 봤을 때는 하얀색에 가까웠는데 뷰파인더에 드러난 모습은 희미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오로라였다. 예상보다 옅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고 있었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에 가까웠지만 정신없이 찍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꽁꽁 어는 듯한 손발을 부여잡으며 티피에 돌아오니 가이드가 오로라 지수란 것을 알려줬다. 레벨 5까지 있는데 사실 오늘 등장한 오로라는 레벨 1~2에 불과했다. 요즘은 날씨가 흐린 날이 많아서 이 정도의 오로라도 못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아직 이틀이 남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교차했다. 분명 방금 오로라를 보고 방방 뛰고 고함까지 질렀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오로라 원정대라고 신나게 주위에 알리고 왔는데 제대로 못 보고 돌아가면 이런 부끄러움이 없었다.

기대하는 건 나머지 이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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