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세 번째 독립

작성자
J
작성일
2018-04-09 00:32
조회
836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사를 가장한 독립이었다. 짐을 싸들고 나가려던 내게 부모님이 재차 질문하셨다. 가족이 함께 사는 넓은 집이 있는데 왜 굳이 돈을 써가며 나가려는 것인지, 그리고 결혼도 아닌데 굳이 혼자 나가서 살 필요가 있는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자, 다시 한번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모님도 이야기를 하실 만했다.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첫 번째 독립은 대학생 때였다. 논현동에 있는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는데, 마침 집과의 거리가 가깝지는 않아서 적절한 핑계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인 <퀴즈쇼>에서 주인공이 사는 고시원에 대한 묘사를 보곤, '대체 이 공간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작고 불편하지만 치열함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처럼 보였고, 언젠가 꼭 살아보자고 다짐했었다. 마침 기회가 왔으니 놓칠 이유가 없었다.

반년 동안 머물던 자양동 고시텔 방은 상상을 체감시켜준 곳이었다. 침대와 책상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했고 그 사이가 팔 굽혀 펴기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식사는 책상에 딸린 네발 바퀴 의자를 식탁 삼아 하곤 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또 얼마나 얇던지, 옆방 사람이 애인을 데려왔는지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 알아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벌집처럼 구획은 나뉘었으나 모두가 한 집에서 살을 부대끼며 사는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비싼 곳이어서 전반적으로 깔끔했고 방에는 창문이 있었으며,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밥과 김치가 제공되었다. 이 시절 동안 나는 나를 알게 됐다. 얼마나 청결하였는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지, (결론적으로 밥과 김치 만으로도 반 년동안 아침 식사가 가능한 사람이었고, 때때로 기분 좋은 날은 김과 참치캔이 함께 하기도 했다) 티브이란 존재가 사는 공간에 꼭 필요한 것인지 등. 모든 것이 갖춰진 가족과의 삶에서는 알 수 없던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꼭 이야기를 하곤 한다. 혼자 살아보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특히 나이를 먹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혼자 사는 경험은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물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독립은 회사를 다녔을 때 맞이했다. 혜택이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최적의 출퇴근 시간이라는 삼십 분이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거리도 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독립이 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의미 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느끼듯이, 직장에서 많은 의미를 찾지 못했다. 특히 오래전부터 갈망했던 회사에 들어갔던 것이라 기대와 실망의 간극이 더 컸다. 간극을 채우고자 나름 많은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아 서핑과 트레일 러닝을 해보고, 휴일에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하고도 해결되지 않아 떠오른 것이 자아가 깃든 공간이었다.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머무는 장소는 생활 습관을 바꿀 정도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머무는 공간을 동네부터 인테리어까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떤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 고시텔에 살았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좁은 곳에서 정신없이 씻고 먹고 자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돈을 버는 회사원이 되었으니 무언가를 도모할만한 여력이 됐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고시텔보다 네 배나 넓어진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그래 봤자 열 평도 되지 않았다) 회사와 멀지 않고 흥미로운 곳들이 가득한 서교동을 선택해 일 년 동안 살았다. 이 때도 깨달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일단 복층 오피스텔은 보기에만 좋은 주거 형태라는 점이었다. 복층은 날씨에 취약하다. 기본적으로 층고가 높은 만큼 창문이 크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그만큼 냉난방비가 많이 든다. 더불어 복층 오피스텔은 대부분 2층의 높이가 낮은 편이라, 올라가는 순간 겸손해져야 한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천장에 머리를 박기 마련이라 그만큼 잘 때도 불편하다. 물론 혼자서 잠만 자는 것이면 큰 상관은 없다. 다음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당시 살았던 서교동은 일종의 신세계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아파트만 가득한 베드타운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 근처에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행복한 마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스세권, 맥세권에 산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였다. 관악기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공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어서 지나칠 때마다 늘 눈길을 끌었던 수족관, 업사이클링으로 컨테이너를 활용한 카페 등 흥미로운 곳들이 많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연남동까지 무심코 걷다가 홍대입구역 3번 출구 근처에 있는 '어쩌다 가게’에서 작은 서점 한 곳을 발견했다. 현재는 해방촌에 위치한 서점인 ‘별책부록’이었다. 안에 들어간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하나가 퍽 하고 깨져버렸다. 기존에 알던 책과 사뭇 달라 보이는 책들이 서점 안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이란 것이 소설가 혹은 시인이거나 어떤 성과를 이룬 사람만이 이름을 걸고 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곳에 있는 책들을 살펴보니 제목부터 제본 방식까지 가관이었다. 그중에서도 어떤 책은 특히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똥오줌>이란 제목에 무려 스테이플러 심으로 고정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바로 저자가 책을 직접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독립출판의 세계였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책들을 발견하곤 충격받아서 바로 점장님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올해 안으로 제 책을 가져올 테니 입고해주세요.” 서른을 넉 달 앞둔 어느 가을이었다.

이십 대를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십 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십 대는 가치관과 취향이 정립돼던 시간이었고, 그때 당시 읽었던 책들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만날지 안 만날지 혹은 세상에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그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전달 수단으로 책만 한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몰두해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는지 상상도 못 한다. 그렇게 마법 같은 넉 달을 보낸 뒤, 12월 말 책을 들고 와 입고 신청을 했다. 책의 이름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나오는 가사를 차용해 <머물러 있는 청춘>으로 정했다. 삼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청춘의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을 담아서.

이제 세 번째를 맞이하는 독립이다. 독립을 할 때마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첫 번째는 학생이자 인턴이었고, 두 번째는 회사원이었으며, 지금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됐다. 이번 독립의 목적은 오로지 나를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독립을 하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단점들이 많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들고, 끼니를 부실하게 먹을 가능성이 높으며 온갖 집안 살림으로 인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덮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니, 모든 걸 혼자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과 함께 살면 몸은 편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집에서 한참 빈둥거리다가 잠깐 몰두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꼭 대화를 걸거나 일을 시키는 상황이랄까. 가족을 사랑하지만 사랑과 별개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앞서 언급한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돈을 쓰는 만큼 더 일하면서 균형을 맞추기로 했고 (지금 보니 엄청 멍청해 보인다), 식사는 품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영양을 골고루 챙길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 불필요한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 붙박이장으로 가득한 빌트인 오피스텔을 구했고, 가구는 침대와 큰 탁자 그리고 의자 몇 개만 뒀다. 나이만 먹은 애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서른이 넘었으니 적어도 몇 가지의 요리와 빨래를 비롯한 각종 가사활동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회사에서 엑셀을 잘 만들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잘하면 뭘 하겠는가.

이사를 한지 얼마 안돼 집안의 구조와 가구 배치가 아직 낯설다. 자꾸 새끼발가락을 가구와 문틈에 찧는 바람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기도 한다. 일종의 성장통이며 차츰 공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이번 독립은 어떤 의미로 내 삶에 다가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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