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년 전 겨울의 옥인동에서 시작된 이야기

작성자
J
작성일
2017-08-21 03:36
조회
1065
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서촌 구석에 있는 옥인동 투어를 했었다. 첫 방문이었기에 유난스러울만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갤러리 안에는 군중(이라고 표현하기엔 소수였지만)들 틈에서 작가인 듯한 여성 분이 설명을 하고 계셨다. 1년 동안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남겼던 자신의 그림 이야기였다. 듣다보니 내 눈망울은 어느새 슈렉의 고양이로 바뀌어 버렸다. 특히 남미 이야기가 어찌나 부러웠던지. 그뿐만 아니라, 작가의 그림은 실력은 기본이고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신선했다. 조금 과장하면 르네 마그리트가 연상되는 기발함이랄까. 그렇게 우연히 만났던 전시는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후 펜 드로잉을 취미삼아 했을 때 그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며 모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못 그려서 좌절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이후로 2년 반이 흘렀다. 전시를 본 이후로 작가의 팬이 되었고 소식을 종종 챙겨보았다. 그런데 이번 달 동안 새로운 전시를 하신단다. 사진 작가, 가수와 함께 떠났던 쿠바 여행이 테마였다. 쿠바 여행이 로망 중 하나이기도 하고 2년 전의 두근거렸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 전시를 봤다. 쿠바의 체취가 묻어나오는 사진과 그림이 공존하는 전시실에는 당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인 Linda Linda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과 귀가 즐거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갖고 싶다는 발랄한 생각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물론 반 고흐와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김환기, 유영국의 작품은 내가 평생을 벌어도 못 살 것임이 99.9퍼센트로 확실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화가의 그림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 조금 무리해서 작은 그림을 한 점 샀다. 엽서도 레플리카도 아닌 진품을 산 것은 처음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마음이 끌렸는데, 마침 판매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찌나 기뻤던지.

누군가는 이 돈으로 좋은 옷을 사거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겠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오늘의 지름이 너무 만족스럽다. 어찌되었든 그림은 한 번 사면 평생가니깐. 더불어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꿩먹고 알먹기한 기분이다.

2년 전 옥인동에서의 좋았던 추억은 고스란히 남았고 오늘 다시 부풀어올라 기억에 남을 선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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