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의 교토

작성자
J
작성일
2017-06-20 00:36
조회
1082
열심히 걷고 보고 마신 교토_170612~14


사실 교토는 계획에 없던 도시였다. 아마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알고있던 정보라고는 일본의 옛 수도여서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정도. 그런데 수많은 다른 후보지들을 제치고 교토에 갔다. 어느 순간 리프레시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가깝고도 한적한 느낌을 주는 교토는 현실적으로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최상의 선택이 되었다.

한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를 몇 가지만 갖추면 된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도시는 이런 특징들이 있다. 먼저 푸른 바다 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담한 강이 있고, 마음껏 걷고 쉴 만한 공원이 많을수록 좋다.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여는 공간이 있는데 소란스럽지도 않다면 금상첨화다. 더불어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과 영감을 주는 공간들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넘치지 않아야 하고 높은 건물들이 적을수록 좋다. (사실 맛집 이런 것들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요소들이 아니다. 웬만하면 다 맛있게 먹으니깐.) 이런 요소들 중 몇 가지만 갖추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도시인데, 운이 좋게도 이 모든 것들을 해당하는 도시를 경험 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피렌체와 바르셀로나가 있었고, 이번 여행으로 인해 교토가 추가되었다.

교토가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가모강이다. 가모강은 교토 시내 중심부에 있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한결 친근한 느낌을 준다. 거북이 모양의 징검 다리를 밟으며 건널 수 있고, 양 갈래로 길게 늘어선 둔치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달릴 수도 있다. 강변에 위치한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먹는 음식과 커피 한 잔은 지극히 낭만스러운 경험 이기도 하다. 가모강은 중심부에서 벗어날 수록 한적한데, 열심히 걷다보면 아름드리 나무 앞에 걸터앉아 독서를 즐기는 노인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보니, 나이가 들어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꽤나 멋진 선택이리라. 비슷한 느낌의 강이 피렌체에도 하나 있어서 옛날 생각이 종종 떠올랐다. 피렌체 중심부에 있는 아르노강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베키오 다리가 있는 곳인데, 밤에 가서 그 풍경을 보면 그야말로 절정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하면, 가모강은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에 깊게 관여한 실용적인 강에 가깝다.

또한 교토의 건축물들은 대체로 낮다. 아마도 지진의 영향이 클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거형태가 평수가 상대적으로 넉넉하고 높이를 올린 아파트가 일반적이라면, 일본은 평수가 아담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누려야 하기에, 공간의 구조는 그만큼 오밀조밀하면서도 다양하다. 또한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은 없을 것이다. 낮은 건축물로 인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하늘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 숲에 갇혀 살다보면, 고개를 들고 싶지가 않다. 어차피 보이는 것은 건물의 상층부일테니. 그런데 교토는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인다. 날씨가 맑든 흐리든 하늘을 볼 맛이 난다. 물론 맑으면 고개를 내내 들면서 걷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어딘가에 정강이를 부딪히면서 엄청 아파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교토는 걸을 맛이 나는 도시다. 일단 거의 평지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먼 거리를 걸어도 지치지 않고, 우연히 흥미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곳곳에 공원과 신사가 있고, 눈길이 절로 머무르게 되는 집들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는 마음에 쏙 드는 길을 두 개나 발견했다. 하나는 작정하고 간 길이고, 하나는 우연히 발견한 길. 전자는 그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다. 교토의 북동부에 위치한 은각사에서부터 철학자의 길에 이르는 코스는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오롯이 걷기에 너무 좋다. 특히 내가 간 6월 중순은 초여름이기 때문에, 걷는 내내 녹색의 향연에 갇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었다. 후자는 (철학자의 길처럼 명칭이 없기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가모강에서 가와라마치역 방향으로 한 블럭 안으로 들어가서 북쪽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다. 도보는 한 사람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고 곁에는 실개천이 졸졸졸 흐른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다. 걷는 중간에 작은 다리를 종종 만날 수 있는데, 다리 중간에 서서 한껏 축 늘어진 버드나무들이 있는 실개천을 보는 풍경이 참 좋았다.

그 외에도 에르메스와 라이카처럼 전통에 절묘하게 스며든 브랜드 숍들과 고즈넉한 인테리어와 훌륭한 맛을 뽐내는 바(특히 Rocking chair가 너무 좋았음)들이 있어 행복했다. 이번 여행에는 청수사와 이조성, 금각사 등 유명한 전통 공간들과 매력적인 까페들을 거의 가지 않았기에, 벌써부터 다음 여행이 기대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과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 그리고 온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겨울까지, 다른 계절의 교토도 너무 궁금하다.
전체 2

  • 2017-06-20 01:45

    잘 읽었습니다! ^^


    • 2017-06-22 23:03

      즐거운 여행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