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개의 키워드

작성자
J
작성일
2016-12-22 15:56
조회
2399
나를 소개하고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선보일 수 있는, 작지만 흥미로운 기회가 생겼다. 어찌어찌 추천 책들을 선정하고 코멘트까지 썼는데,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 3개에서 턱- 막혀버렸다.

이 키워드는 소셜 데이팅 서비스의 프로필에서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화난(!) 등근육' 같은 키워드나, 취업 뽀개기에 성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소서에 썼던 '책임감이 막중한 불독형' 과 같은 가벼움으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기나긴 고민 끝에 어느 정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균형 잡힌 삶, 건강한 개인주의, 낭만을 꿈꾸는 현실주의자'이다. 여기서 균형 잡힌 삶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먼저 '건강한 개인주의'는 개인주의 혹은 개인주의자와 고민을 했다가, 결국 '건강한'이란 형용사를 붙였다. 개인주의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려니 정작 그 뜻이 정확히 나를 표현하는 것인지 헷갈리더라.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김영하 작가가 했던 이야기를 발견했다.

'남과 다르게 사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가는 것, 그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런 개인주의를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 그 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경험에 의존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이기주의로 오인받을 수 있는 개인주의보다, 더욱 더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물론, '건강한' 이란 형용사가 빠지더라도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미션이다.

다음 키워드는 '낭만을 꿈꾸는 현실주의자'이다. 처음에 낭만을 썼다가, '낭만 추구, 낭만을 향한 동경, 낭만주의자, 낭만고양이(!)' 등등의 키워드를 쓰고 지우는 것을 반복했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낭만적인 삶을 꿈꾸는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만에 대해서 다시 검색을 해보았다.

낭만이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에 매이지 않다'라는 표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모든 의사 결정을 할 때 효율성을 추구하고, 각각의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그린 뒤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늘 꿈꾸는 것이 낭만이다. 한치의 계산도 없이,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살 수 있는 삶.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의하는 낭만에는 아름다움이란 의미가 짙게 배어있다.) 언젠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금은 타협을 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사는 것 같다.

그저 나에 대한 키워드 3가지를 쓰는 것 뿐이었는데, 어젯 밤부터 오늘 오후까지 꼬박 하루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하려고 했던 일을 하나도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 키워드는 또 변할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현재의 나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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