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우리 동네

작성자
J
작성일
2016-09-27 20:10
조회
1107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거나 오랜 시간 머물렀던 동네 중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에 남는 곳은 하안동, 행신동, 관산동, 명륜동, 자양동, 신문로, 서교동 그리고 연희동이다. 돌이켜보면 꽤나 다양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안동과 행신동은 가족과 함께 사는 동네이고, 관산동은 고등학교 기숙사가 있는 곳이며 명륜동은 대학시절을 보냈던 공간이다. 자양동은 인턴을 하면서 살았던 고시텔이 있고, 신문로는 이전 회사가 위치한 장소이며 서교동은 1년간 독립을 하면서 지냈던 동네. 그리고 연희동은 지금 일을 하면서 오랜시간 머물고 있는 동네이다.

다양한 동네에서 각각 다른 기간동안 머물렀지만, 정작 '우리 동네'라고 부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기간의 길이가 아니다. 오랜 기간 머물렀어도 애정이 가지 않는 동네가 있는 반면, 길진 않아도 '우리 동네'라고 입에 착착 붙는 동네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18년을 산 행신동은 전자이고, 이제 1년이 된 연희동은 후자이다.

행신동이 전자에 속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딜가도 똑같은 아파트만 있을 뿐 더러, 그 중에서도 주로 잠을 자는 목적으로 가게 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랜 기간 머물었지만 그만큼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 반면, 연희동은 흥미로운 점으로 가득한 동네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높이가 높지않아 하늘을 마음 편히 볼 수 있고, 대로변에 있는 나름의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의 정취가 가득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더불어 서울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이 남아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가게들도 많다. 책바 옆에는 꽃집이 하나 있는데, 사장님은 내가 생각하는 연희동 최고의 대인배다.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어도 바깥에 놓아둔 꽃들을 그대로 두신다. 덕분에 새벽에 퇴근을 해도,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희동은 걸을 맛이 난다. 생각해보면 내가 우리 동네라고 불렀던 동네는 모두 걸을 맛이 나는 곳이었다. 빌딩 숲으로 가득한 신문로도, 뒤에 정동길이 있었기에 애착이 있었다.

앞으로 내가 또 어느 동네에서 머물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동네를 선택하게 될 때 교통, 땅값이 오를 가능성 등의 여러 조건을 떠나 '걸을 맛'이 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왠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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