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책바 단상_마감 즈음에

작성자
J
작성일
2016-04-12 10:28
조회
938
마감 시각에 다다를즈음, 바에 앉은 손님이 1-2분 계신다면 나는 손님들에게 종종 이렇게 제안을 한다.

1. 듣고 싶은 노래 적어주세요.
2. 우리 글 한 번 써볼까요?

보통 1번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2번을 한 날이었다.
나를 포함한 3명 모두 즉흥 글쓰기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 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주제를 이렇게 정해진다.

1. 아무 책이나 고른다.
2. 페이지를 랜덤하게 넘기고 손님이 스톱! 하면 멈춘다.
3. 손님이 눈을 감고 어떤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4. 선택된 단어를 주제로 글을 쓴다.

지난 번엔 '그녀'가 선택되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남성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더니, 오늘은 '연장근무' 였다.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 선택한 단어인데, 김연수 작가님, 감...감사합니다.

우리는 선택된 단어를 보고 모두 당황했지만, 수긍하고 이내 쓰기 시작했다.

다음은 나를 포함하여 3명이 쓴 글이다.
모두들 10분 정도 생각하고 쓴 글이라, 완성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재밌으니?

자, 그럼 내가 쓴 글은 과연 무엇일까요?


#1.
타인이 이야기 하는 내 모습이 있다. 나는 인정하기 싫어하는, 필요하다면 가차없이 부정한다. 하지만 그 고질적인 부분이 현실이다. 자기 자신은, 나 외에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마음먹기 전 까지는. 그리고 다르게 살아간다 하여도, 나는 그랬던 사람 일 뿐.
누군가의 기억 속, 내 모습을 생각 해 본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해 보이기도, 멋지거나 혹은 비참하게, 심지어 고요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삶을 살아간다. 본인에게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그렇기에, 모든 감정과 행동에, 일정 약속 지점을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싶다. 모두가 인정하는,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는, 또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아마도 우리에게 그런 적절한 합리점은, 연장근무 가 아닐까 싶다.


#2.
걔랑 좀 오래 만나긴 했지.
근데 언젠가부터 같이 있기 싫어지더라고.
뭔가 같이 있으면 지겨운 느낌?
근데 후번초 언제오냐? 근무를 언제까지 세우는거야. 지겨워 죽겠네.


#3.
지금은 밤 열한시 사십분, 현재 사무실에는 나 밖에 없다. 드디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유일하게 자유가 보장된 시간. 나는 어두운 밤을 헤치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저기는 짧은 치마를 즐겨입는 김대리의 자리, 저기는 아직까지 술냄새가 풍겨나오는 이부장의 자리. 평상시에 김대리 자리에는 먹을 것이 좀 있는데 오늘 따라 보이지 않는다. 야근에는 야식이 최곤데 말이지. 회사에서는 늘 더 높은 성과만을 요구한다. 그렇다보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이 점점 더 늦게까지 일을 하기 시작했다. 9 to 6 라니, 다 개뿔같은 소리다. 거짓부렁이 같은 소리 다 집어치우고 뉴스에 내보내는 말 그대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자유시간도 늘어날테니깐. 오늘은 책상 위에 먹을 것이 없으니 쓰레기통을 좀 뒤져봐야겠다.

이제 눈치 좀 챘는가? 나는 인간이 아니라 쥐다.
전체 2

  • 2016-08-07 11:19

    이 글을 보니 마감시간에 책바에 앉아있어보고 싶어지는군요. 다음엔 야심한 시각에 한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그날은 1번일지, 2번일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


    • 2016-08-19 12:28

      그날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