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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카발란과 이과두주는 ‘헤어질 결심’에서 왜 등장했을까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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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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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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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2주 만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다시 봤다.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재차 보는 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TENET)’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극장으로 발걸음이 향했던 ‘테넷’과 달리, ‘헤어질 결심’은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든 여운이 옅어진 후에서야 다시 보고 싶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영화 중에는 인상적으로 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아직까지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있다. 충성심으로 몇 차례 관람하는 팬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도록 이끌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장해준(박해일)과 송서래(탕웨이)다. 장해준은 형사, 송서래는 중국 출신 출장 간병인으로 그녀의 남편 기도수(유승목)가 실족사하는 사건을 통해 만나게 된다. 서래는 사망자의 아내지만 동시에 용의자이기에, 해준은 그녀를 취조하고 집 앞에서 밤새 감시하기도 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기도수가 소유욕이 강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래의 몸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하는 모든 것에 KDS라는 이니셜을 새겼다.
뿐만 아니라 기도수는 눈에 안 보이는 곳만 골라 가정폭력까지 가하는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존재했지만, 살인 동기 역시 충분했다. 심지어 과거에 엄마까지 사망에 이르도록 만든 기록이 발견됐고, 답답해진 해준은 서래의 집에 찾아간다. 그때 카메라는 서래의 집을 훑으며 술 한 병을 잠시 비춘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Kavalan Solist Oloroso Sherry Cask)’다. 수많은 술 중에서 왜 하필 싱글몰트 위스키가, 그것도 카발란이 그녀의 집에서 등장했을까.
카발란은 편견을 뒤집은 위스키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는 몰팅-당화-발효-증류-숙성-병입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이 중에서 ‘숙성’은 술을 오크통에 담아 몇 년에 걸쳐 풍미가 서서히 스며들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오크통은 이름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내부에 담긴 술은 조금씩 증발한다. 이 현상을 엔젤스 쉐어(Angel's share)라고 부르는데, 천사의 몫으로 나눠준다는 낭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증발 속도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기온이 낮은 고위도 지역에서는 1년에 약 2~3%가 증발하지만, 기온이 높은 저위도 지역에서는 10%에 이르기도 한다. 싱글몰트 위스키 대부분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고위도 지역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카발란은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 탄생했다. 저위도 지역 생산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뛰어난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브랜드다. 2005년 양조장이 만들어진 이후로 세계 유수의 주류 품평회에서 500여 개가 넘는 상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위스키 신생국 중 최초로 런던 국제주류품평회(IWSC)에서 올해의 디스틸러를 수상했다.
카발란 이야기는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익숙하지만, 술을 못 마시거나 소주와 맥주만을 사랑하는 애주가에게는 아마도 낯설 것이다. 즉, 카발란이 집에 있다는 것은 기도수가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겼던 사람이란 사실을 내포한다. 고상함을 지향하는 그의 취향은 평소에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착용하고, 말러의 5번 교향곡을 들으며 등산하는 습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는 직업을 이용해서 3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위스키를 뇌물로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유추해볼 수 있겠다.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제작사인 모호필름에 연락해서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나 기도수라는 캐릭터는 대중적인 스카치 위스키가 아닌 대만 위스키를 찾아 마실 정도로 위스키에 진심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위스키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게 됐는데, 이러한 점이 연결되었는지 카발란을 정식 수입하는 골든블루에서 협찬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카발란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속에서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두 차례 더 등장한다.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버릇이 있는 해준이 회식 장소에서 기도수처럼 플라스크째로 마셨던 장면에서 한 번, 유서 발견 후 사건 종결을 알리러 서래의 집에 방문했을 때 한 번이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카발란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서 이름 그대로 셰리 와인(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위스키다. 증류 작업 후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 넣어 숙성한다. ‘올로로소(Oloroso)’는 스페인어로 향기롭다는 뜻으로 셰리 와인의 여러 스타일 중에서 진하고 묵직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한 모금 머금으면 통후추를 어금니로 쪼개서 먹는듯한 스파이시함이 퍼지고,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오일리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셰리 캐스크의 말린 과일 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피어오른다. 생전에 기도수는 계단 높이로 138층에 해당하는 구소산 정상에 올라간 뒤, 말러 교향곡 5번의 5악장을 들으며 플라스크로 한 모금 마셨을 것이다. 분명 땀 흘린 노력을 보상받는 맛이었으리라.
카발란에 비해 덜 회자됐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술도 유의미하게 등장했다. 대학 시절 엠티나 중국집에서 이루어진 뒤풀이에서 종종 마셨던 이과두주다. 이과두주는 고량주의 일종으로, 두 번 솥으로 걸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워낙 저렴한 가격이지만 증류주인 만큼 도수는 40도에서 60도에 이른다. 중국인들에게는 가장 서민적인 술이라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이과두주를 마시며 향수를 느낀다고도 한다. 마치 우리가 외국에서 소주를 마시는 느낌과 유사하겠다. 영화 속에서 이과두주를 마시는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연하게도 송서래였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새로운 집에서 해준의 고백이 담긴 녹음 파일을 들으며 마시던 술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구덩이 안에 들어갔을 때 마셨던 술이기도 했다. 브랜드를 알아볼 순 없었지만 마트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이과두주였을 것이다. 송서래에게 이과두주는 그리움과 어떤 결심의 술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이렇게 사소한 장치인 술에서조차도 의미와 은유가 촘촘히 담긴 영화다. 하물며 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겼을 것인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나는 영화다. 카발란은 영화 덕분인지 2022년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427%나 증가했다고 한다. 마침 책바에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가 한 병만 남아 거래처에 연락해보니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아쉽지만 이렇게 카발란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 이과두주는 웬만한 마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영화 중에는 인상적으로 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아직까지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있다. 충성심으로 몇 차례 관람하는 팬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도록 이끌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장해준(박해일)과 송서래(탕웨이)다. 장해준은 형사, 송서래는 중국 출신 출장 간병인으로 그녀의 남편 기도수(유승목)가 실족사하는 사건을 통해 만나게 된다. 서래는 사망자의 아내지만 동시에 용의자이기에, 해준은 그녀를 취조하고 집 앞에서 밤새 감시하기도 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기도수가 소유욕이 강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래의 몸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하는 모든 것에 KDS라는 이니셜을 새겼다.
뿐만 아니라 기도수는 눈에 안 보이는 곳만 골라 가정폭력까지 가하는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존재했지만, 살인 동기 역시 충분했다. 심지어 과거에 엄마까지 사망에 이르도록 만든 기록이 발견됐고, 답답해진 해준은 서래의 집에 찾아간다. 그때 카메라는 서래의 집을 훑으며 술 한 병을 잠시 비춘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Kavalan Solist Oloroso Sherry Cask)’다. 수많은 술 중에서 왜 하필 싱글몰트 위스키가, 그것도 카발란이 그녀의 집에서 등장했을까.
카발란은 편견을 뒤집은 위스키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는 몰팅-당화-발효-증류-숙성-병입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이 중에서 ‘숙성’은 술을 오크통에 담아 몇 년에 걸쳐 풍미가 서서히 스며들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오크통은 이름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내부에 담긴 술은 조금씩 증발한다. 이 현상을 엔젤스 쉐어(Angel's share)라고 부르는데, 천사의 몫으로 나눠준다는 낭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증발 속도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기온이 낮은 고위도 지역에서는 1년에 약 2~3%가 증발하지만, 기온이 높은 저위도 지역에서는 10%에 이르기도 한다. 싱글몰트 위스키 대부분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고위도 지역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카발란은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 탄생했다. 저위도 지역 생산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뛰어난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브랜드다. 2005년 양조장이 만들어진 이후로 세계 유수의 주류 품평회에서 500여 개가 넘는 상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위스키 신생국 중 최초로 런던 국제주류품평회(IWSC)에서 올해의 디스틸러를 수상했다.
카발란 이야기는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익숙하지만, 술을 못 마시거나 소주와 맥주만을 사랑하는 애주가에게는 아마도 낯설 것이다. 즉, 카발란이 집에 있다는 것은 기도수가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겼던 사람이란 사실을 내포한다. 고상함을 지향하는 그의 취향은 평소에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착용하고, 말러의 5번 교향곡을 들으며 등산하는 습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는 직업을 이용해서 3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위스키를 뇌물로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유추해볼 수 있겠다.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제작사인 모호필름에 연락해서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나 기도수라는 캐릭터는 대중적인 스카치 위스키가 아닌 대만 위스키를 찾아 마실 정도로 위스키에 진심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위스키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게 됐는데, 이러한 점이 연결되었는지 카발란을 정식 수입하는 골든블루에서 협찬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카발란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속에서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두 차례 더 등장한다.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버릇이 있는 해준이 회식 장소에서 기도수처럼 플라스크째로 마셨던 장면에서 한 번, 유서 발견 후 사건 종결을 알리러 서래의 집에 방문했을 때 한 번이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카발란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서 이름 그대로 셰리 와인(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위스키다. 증류 작업 후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 넣어 숙성한다. ‘올로로소(Oloroso)’는 스페인어로 향기롭다는 뜻으로 셰리 와인의 여러 스타일 중에서 진하고 묵직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는 한 모금 머금으면 통후추를 어금니로 쪼개서 먹는듯한 스파이시함이 퍼지고,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오일리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셰리 캐스크의 말린 과일 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피어오른다. 생전에 기도수는 계단 높이로 138층에 해당하는 구소산 정상에 올라간 뒤, 말러 교향곡 5번의 5악장을 들으며 플라스크로 한 모금 마셨을 것이다. 분명 땀 흘린 노력을 보상받는 맛이었으리라.
카발란에 비해 덜 회자됐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술도 유의미하게 등장했다. 대학 시절 엠티나 중국집에서 이루어진 뒤풀이에서 종종 마셨던 이과두주다. 이과두주는 고량주의 일종으로, 두 번 솥으로 걸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워낙 저렴한 가격이지만 증류주인 만큼 도수는 40도에서 60도에 이른다. 중국인들에게는 가장 서민적인 술이라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이과두주를 마시며 향수를 느낀다고도 한다. 마치 우리가 외국에서 소주를 마시는 느낌과 유사하겠다. 영화 속에서 이과두주를 마시는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연하게도 송서래였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새로운 집에서 해준의 고백이 담긴 녹음 파일을 들으며 마시던 술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구덩이 안에 들어갔을 때 마셨던 술이기도 했다. 브랜드를 알아볼 순 없었지만 마트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이과두주였을 것이다. 송서래에게 이과두주는 그리움과 어떤 결심의 술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이렇게 사소한 장치인 술에서조차도 의미와 은유가 촘촘히 담긴 영화다. 하물며 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겼을 것인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나는 영화다. 카발란은 영화 덕분인지 2022년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427%나 증가했다고 한다. 마침 책바에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가 한 병만 남아 거래처에 연락해보니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아쉽지만 이렇게 카발란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 이과두주는 웬만한 마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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