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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책]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2017.10

작성자
J
작성일
2020-01-31 12:25
조회
676
얼마 전 책바는2주년을 맞이했다.진부한 이야기지만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다.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브라운 아이즈가<벌써 이년>을 불렀다면 한동안 열심히 불렀을텐데.어느 공간이2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나름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도중에 망하지 않았을 만큼 열심히(그리고 잘)했다는 증거이고 여전히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하며,최종적으로는 앞으로2년을 더 운영하겠다는 다짐 및 약속이다.


가게마다 기념일을 맞이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일반적으로 바의 경우는 그동안 찾아와 주신 손님께 감사하는 의미로 무제한 샴페인을 제공하거나 술을 할인하여 판매한다.서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내가 아는 몇몇 작은 서점들은 기념일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술을 마시며 따뜻하고도 깊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그렇다면,책바는 어떻게 기념일을 보내야할까?사실 무난하게 하려면 다른 공간들을 따라하면 된다.책바는 원래 조용한 공간이지만 이날 하루만큼은 여러분들과 좋은 술을 나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그런데 나는 원체 유별난 고집이 있는 성격이라 뭔가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기념일을 위한 책,즉<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프로젝트였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면,세계 여행이나 로또1등 같은?하지만,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꿈도 있지 않을까.나 역시 군대에 있을 적에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몇 가지 꿈을 설정했는데,그 중 하나가 책을 쓰는 것이었다.책이라는 물성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이나마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낭만적으로 느껴졌다.그런데 사실 책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쓰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책바를 통해 실현한 것이 바로'빌보드 차트'다.술의 힘으로 우리 안에 감춰진 감수성과 진심을 깨우는 것이다.책바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제를 정해서 공지하면 방문한 손님들은 술을 마시며 글을 쓴 뒤 한 쪽 벽면에 붙인다.그리고 그 글을 읽은 다른 손님들은 투표를 하고 최종적으로3등 안에 들게 되면 술 한 잔을 상으로 드리는 것이다.이 기록들은 모두 홈페이지에 켜켜이 쌓였고 어느새 책으로 탄생할 수 있을 만큼의 양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만든 것은'책바 문학상'이다.이상 문학상,황순원 문학상은 들어봤어도 책바 문학상이라니.사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문학상에 응모하곤 하지만,진입장벽이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래서 부담없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문학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소설을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일단 시와 수필로 분야를 정했고,상품을 돈이 아닌 술과 책으로 정했다.정말 사람들이 응모를 할까?라며 반신반의로 시작을 했지만,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소중한 글들을 보내주셨다.그 중에는 감히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글들도 많았고,결국 친분이 있는 서점 대표들과 책바의 단골인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발표를 할 수 있었다.즉,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에는 빌보드 차트와 책바 문학상의 수상작들이 수록되었다.책 뒷편에는 작가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담겨 있음은 물론이고,출간 이후에 이들에게 선물로 증정할 예정이다.


사실 이 작업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손님에게 드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표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혼자서 해야한다.마감이 보통 새벽 한시 반인데,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24시간 카페에 가서 일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그래서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그런데 어쩌겠는가,좋아서 시작한 일 인걸. 


한 달 이상 몰두했던 작업이 어느새 마무리 되고 있다.큰 사고 없이 무사히 탄생하여 전달 되기만 하면 된다.책을 받는 분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 그동안의 노곤함도 사라질 것이다.물론 앞으로도 이런 이벤트들이 종종 등장할 터이고,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힘들어 하기도 할 것이다.그래도 결국은 잘 마무리하고 뿌듯해하고 있겠지.어찌되었든 새로운2년의 시작이다.다채로운 경험이 가득한 시간이 되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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