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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책] 인공 지능 시대의 서점 주인과 바텐더란? 2017.09

작성자
J
작성일
2020-01-31 12:23
조회
495
얼마 전,인터넷에서 소름 돋는 뉴스를 발견했다.인간의 언어를 모방하여 학습하던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갑자기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다.이 사실을 발견한 개발자들은 부랴부랴 시스템을 강제종료 시켰다고 한다.다음부터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구조로만 소통하라는 주문과 함께.그야말로 알파고를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SF영화에서만 구현될 것 같은 사건을 목도하니,정말 스크린과 책에서 묘사되었던 미래 세계에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치동은 한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동네다.특목고 입시,논술, SAT등을 가르치는 다양한 학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수업이 끝나는 시각인 밤10시 즈음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의 차량으로 그 일대의 교통이 마비된다.그런데 이런 대치동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바로 코딩 학원의 등장이다.왜냐고?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연일 언론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눈 깜빡할 때마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고,사람들은 그 속도를 맞추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이 세상에 나는 책바를 운영한다.디지털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직업인 서점 주인과 바텐더로서. (더불어,종이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고 독립출판을 하는 출판사마저 있으니 그야말로 아날로그 끝판왕인 셈이다.)사실 잘 다니던 회사를(몰래)그만두고 책바를(이미)오픈 했다고 말씀드렸을 때,부모님께서 뒷목을 잡으셨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나는 디지털 시대에 더 빛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내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책바는 이름 그대로 바와 서점이 결합된 공간이다.책을 읽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만 널리 알려졌지만,사실 책바에 오는 모든 손님이 이 행위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어떤 손님은 가만히 멍을 때리기도 하고,어떤 손님은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고 동시에 야구를 보기도 한다.또 금손인 손님들이 은근히 많아서 이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흔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다.즉,책바는 대부분의 손님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라도 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고,나는 이들이 방문할 때 마다 자신들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끄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핸드 셀링(Hand selling)이란 서점 업계 용어가 있다. '어떤 행위의 첫 경험 혹은 맛보기’라는 뜻의 이 단어는 서점 직원이 손님이 읽고 싶어하는 책을 찾아서 건네는 것을 의미한다.최근 서점에서 책을 추천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하나는 아마존 등의 온라인 서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빅데이터이고 나머지 하나는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주로 가능한 핸드 셀링이다.가령,아마존에서 이용하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이러하다.독자가 읽었던 책과(그 책을 읽었던)다른 독자들이 전에 읽었던 책들을 분석하여 책을 추천한다.놀라운 유사성을 보일 수 있지만 의외성은 다소 낮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작은 서점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방문한 손님의 취향과 기분 상태 등을 곁에서 파악한 뒤,자신이 선별하여 진열한 책 중 적절한 것을 선택해 제안할 수 있다.아마도 아마존은 소설<달과6펜스>를 감명 깊게 읽은 손님이 예술 도서인<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핸드 셀링은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에게도 통용된다.세상에는 수많은 칵테일이 존재하고,한 잔의 칵테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개입된다.어떤 술을 얼마큼 사용하는지,어떤 얼음과 잔을 사용하는지,셰이킹을 어떻게 몇 번 했는지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그리고 바를 방문하는 손님의 상태 역시 다양할 것이다.밖의 날씨와 현재의 기분 그리고 평소 취향과 주량 등 각각의 요소에 따라 마시고 싶은 술이 다를 수 있다.그런데 이 손님이 추천을 부탁한다면,바텐더는 온 신경을 그에게 집중하여 가장 적합한 칵테일을 만들어야 한다.또한 바텐더는 가까운 사람과도 나누기 힘든 대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책바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공간이지만,늦은 시각에 다른 손님이 없을 경우 남은 손님과 종종 대화를 나눈다.때로는 함께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기도 하며 감정의 안식처가 되고자 한다. (물론 바에서 나누는 대화는 밖에 나가면 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결국 바와 서점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곳이다.그리고 사람들은 전자가 아닌 후자의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극도의 효율과 편안함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다소 불편하지만 온기와 소통을 찾는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서점 주인과 바텐더,꽤 괜찮은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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