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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한 잔 2017.06

작성자
J
작성일
2020-01-31 12:18
조회
465
약 2년 전, 책바를 준비하던 때에 친구들이 종종 묻곤 했다. 

“책바의 목표는 뭐야? 1억 넘게 버는건가, 아니면 백종원 아저씨처럼 프랜차이즈 하는거?”


나는 대답했다.

“아니, 다른 목표가 몇 가지 있긴 한데, 일단 1차 목표는 이 분이 오는거야.”


책바의 위치는 서대문구 연희동이다. 그리고 연희동에는 유명한 (적어도 나에겐) 사람이 두 명 산다. 그 중의 한 명은 머리 숱이 거의 없기로 유명한데, 그 사람의 이야기로 소중한 지면을 할애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소설가 김영하다.


나는 삶에서 소설의 영향을 꽤 받은 편이다. <달과 6펜스>를 읽고 현실과 이상에서 이상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고, <우리는 사랑일까>를 통해서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고는 고시텔에 살아 보기도 했으며, 그 때의 경험이 이후에 독립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독립적인 생활이 지금의 책바를 운영하게 되는데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어찌하였든 내 삶에 영향을 준 작가라는 사실에 그를 막연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지난 4월 중순, 홀연히 책바에 나타났다. 하필이면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 당연하게도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책과 술이었고,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소재는 소설 <빛의 제국>이었다.


<빛의 제국>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동명 작품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그림을 보면 생경한 풍경에 시선이 절로 머물러진다. 어두운 풍경 안에 집이 있고 그 집은 가로등이 일부분 만을 밝히고 있는데, 반면 하늘은 너무나도 맑고도 밝다. 즉,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는 그림인 것이다. 김영하는 이 그림을 해석하여 소설의 주제로서 멋지게 녹여냈다. 남파된 지 20년 만에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40대 간첩 기영의 갈등이 주된 내용인데, 그는 그림처럼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을 공존 시켜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 뿐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다른 동지를 찾아가 상황을 알아보기도 하고, 친한 동생 지현을 찾아가 사실을 밝히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빛과 어둠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지현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형은 변했어. 아니, 변했을 거야. 난 형을 알아. 형은 히레사케와 초밥, 하이네켄 맥주와 샘 페킨파나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인간이잖아? 제3세계 인민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뫼르소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극우파 게이 미시마 유키오의 미문에 밑줄을 긋는 사람이잖아? 일요일 오전에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금요일 밤엔 홍대앞 바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고. 안 그래? 돌아가기 싫어서 나한테 털어놓은 거잖아. 내가 잡아주기를 내심 바라는 거잖아. 아니야?” (p.319-320)


20대 초반에 남파되어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인생의 절반은 북한에서 나머지 절반은 남한에서 삶을 살게 된 그는 어느새 남한의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 아니, 우리가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되는 수많은 소시민들 중의 한 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하이네켄 맥주는 어느새 자본주의에 스며든 그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하이네켄(Heineken)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시골 슈퍼에서도 버드와이저와 더불어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수입맥주다. 맥주는 크게 라거와 에일로 나뉘는데, 두 맥주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발효방법이다. 라거는 하면 발효(Bottom fermentation)라고 하여, 발효 과정 중에 효모가 가라 앉는다. 오랜 시간 동안 발효하여 부드러운 맛과 동시에 톡 쏘는 탄산감이 특징이다. 반면, 에일은 상면 발효(Top fermentation)를 하여 효모가 뜬다. 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발효하고, 탄산감은 낮으며 향이 풍부한 편이다. 요즘에야 에일 맥주들을 많이 마시지만, <빛의 제국>의 배경인 이천년대 초반은 라거가 대세였다. 땀이 뱀같이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냉장고에 차갑게 냉각된 하이네켄 캔맥주를 따서 마시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다른 유명한 라거를 놔두고, 하필이면 왜 하이네켄이 등장했을까? 사실 별 이유 없다. 김영하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이기 때문이다. 그와 나누었던 다른 이야기들도 있지만, 분량에 한계가 있어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번 기고가 마지막 글이다.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책과 술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기회가 되셨길 바란다. 그럼 책바에 책 한 잔 하러 오시길!


_

레시피 (음용방법)


1) 일단 라거 맥주는 차가울수록 맛있다. 냉장고에 넣어 냉각한다.

2) 잔을 60도 각도로 들고 맥주를 조심히 따른다.

3) 8부 능선에 다다름에 따라, 잔을 직각으로 든다.

4) 맥주가 10% 정도 남았을 때, 병 혹은 캔을 원으로 흔들어 거품을 만든다.

5) 거품을 잔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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