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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타향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책 한 잔 2016.10

작성자
J
작성일
2020-01-31 11:58
조회
271
프랑스의 '파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에펠탑일 것이다. 물론 예술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르셰 미술관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퐁 뇌프 다리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샹젤리제 거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에 '개선문'이 떠올랐다면, 아마도 '책' 그 중에서도 '고전 소설'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20세기 중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개선문』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선문에는 작품만큼 유명한 술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들이 틈만 나면 마셔대는'칼바도스(Calvados)'이다.



『개선문』의 시대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프랑스 파리다. 얼마 전까지는 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옆 동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점차 인근 영토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유럽 전체가 긴장이 가득한 상태이다. 동시에, 나이트 클럽과 사창가들은 많은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주인공 라비크는 독일인이지만, 모국에서 도망친 외과의사이다. 히틀러의 비밀경찰에게 쫓기는 친구들을 도와주다가, 자신도 붙잡히고 결국은 연인까지 잃게 된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술은 칼바도스이다. 물론 키르쉬, 아르마냑, 코냑, 페르노, 보드카 등의 술도 마시지만, 그의 매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단연 칼바도스였다. 새로운 연인인 조앙 마두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순간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숙소에서도 심지어 죽이고 싶은 사람을 발견할 때도 늘 함께 한다. 그 중에서도 이 문장은 칼바도스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라비크를 쳐다보았다.

"이런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마셔 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숨만 들이쉬면 되네요."

"그렇습니다, 마담." 하고 웨이터가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제대로 아신 겁니다."

"라비크." 조앙이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위험한 짓을 하는 거예요. 이런 칼바도스를 마시고 나면, 다른 건 안 마시고 싶어질 거예요."

"아냐, 그렇지 않아! 다른 것도 마시게 될 거야."

"하지만 언제나 이걸 못 잊을 거예요."

"좋지. 그럼 당신은 낭만주의자가 되는 거야. 칼바도스-낭만주의자."


그렇다면, 조앙 마두가 극찬해 마다않는 칼바도스란 술은 어떤 것일까? 먼저 브랜디(Brandy)는 'Burned wine'이라는 어원답게 와인을 증류시켜서 만든 술이다. 그런데 브랜디는 포도만 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포도뿐만 아니라 배, 체리 그리고 사과로 만든 브랜디가 있다. 이 중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지역에서 생산된 사과 브랜디를 칼바도스라고 한다. 칼바도스는 사과로 만든 술인만큼, 맛과 향에서 사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덜 숙성될수록 신선한 사과와 배의 향이 나며, 오래될수록 브랜디와 점점 유사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통 식전주로 마실 뿐만 아니라, 식사 중과 식후에도 마실 수 있다.


『개선문』에서의 칼바도스는 라비크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술이었다. 딱히 의지할 것이 없던 그에게 칼바도스만큼 힘이 된 것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찾을 때마다 칼바도스는 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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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음용방법)




1) 위가 좁고 아래가 볼록한 스니프터 글래스에 1oz를 따른다.

2) 사과의 풍미를 풍부하게 느끼고 싶다면, 잔을 데워 칼바도스를 따뜻하게 한 뒤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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