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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 내가 살고 싶은 집은 2016.03
작성자
J
작성일
2020-01-31 11:44
조회
436
"제가 보았을 때 트렌드는 의-식-주 순서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방송사에서 PD로 일하는 손님이 하신 이야기다. 책바에는 다양한 직종의 손님이 방문하기 때문에 그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내가 접하지 못했던 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칵테일을 만들다가도 나도 모르게 손님의 이야기에 빠져들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손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른 손님에게 말하지 않는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도 올해의 트렌드는 작년의 식(食)에 이어 주(住)이다. 어느 업종보다도 트렌드의 냄새를 잘 맡고 또 이끌어내는 방송가에서는 '내 방의 품격'과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등 집과 인테리어에 대한 방송을 만들어 관심을 이끌고 있다. 더불어 내가 즐겨읽는 잡지인 베어 매거진(Bear magazine)의 이번호 주제도 '집'이다. 건축가, 조명 전문가, 1인 인테리어 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몇년 전부터 '공간'에 대한 막연한 로망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고시텔과 오피스텔에서 살아보았고, 현재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며 머물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이렇게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물론 알 수 없는 내재적인 동기도 있었겠지만, 故 구본준 한겨레 기자님의 글이 영향력이 컸다. 생각해보면, 그의 블로그를 읽고 정말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4년 전 제주도에 있는 포도 호텔과 그 곳에서 파는 한국 최고의 우동에 대한 글(http://blog.hani.co.kr/bonbon/37436)을 읽고, 너무 보고 싶고 또 먹고 싶어서 스쿠터를 타고 태풍을 뚫어 가기도 했었다. 엄청난 폭풍우에 우비를 입고도 속옷까지 젖어서, 마치 물에 빠진 생쥐 마냥 포도 호텔에 다다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렇게 도착한 뒤 나를 맞이한 호텔 레스토랑 직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포도 호텔의 우동이 정말 맛있다는 글을 읽고, 너무 먹고 싶어서 서울에서 태풍을 뚫고 왔어요."
다행스럽게도(!) 그런 초라한 모습에도 직원께서 환대를 해주셨고, 그야말로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우동을 먹었다. 우동이 맛있었는지 상황 때문이 그러했던지 간에, 정말 인생 최고의 우동이었다. 당시 돈이 없던 학생이라 우동만 먹고 이동을 했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포도 호텔에서 하룻밤 꼭 머물고 싶다.
그렇게 구본준 기자님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가 쓴 블로그 글 뿐만 아니라 책도 읽게 되었다. 그 중에서 최근에 읽은 책이 <두 남자의 집 짓기>이다. 구본준 기자님과 건축가인 이현욱 소장님이 함께 짓고 또 함께 살던 땅콩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땅콩집은 이름 그대로 두 집이 양 옆에 붙어있으며 - 물론 집은 분리되어 있다 - 하나의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발상은 이러하다. 직장에서 10년 정도 일하였고 융자를 포함해 약 3억의 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으로 로망인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마음이 맞는 벗과 함께 돈을 합쳐서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면 어떨까? 그렇게 두 분이 합심하여 시작한 것이 '땅콩집 프로젝트'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집의 형태는 대부분 아파트이다. 관리의 측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자연과 떨어져있고 사는 이의 진정한 편의보다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이기에,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렸다. 나 또한 아침이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눈만 뜨면 씻고 바로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땅콩집은 다락방 등 부모와 아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고 집 앞에 마당도 만들 수 있다. 그렇다, 무려 마당이다. 나무와 꽃을 심을 수 있고, 강아지가 뛰놀며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그 마당.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단독주택에 대한 단점은 단열이 잘 안되고, 전기세가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아파트와 비슷한 가격으로 단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전기세를 낮출 수 있는 방법 등이 세세하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의 출간 시점은 약 5년 전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또 다를 수 있다. 또한 3억이란 돈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3억은 상징적인 액수일 뿐이다. 저자 두 분은 3억보다 작은 돈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액수를 건축가에게 말씀드리면, 건축가는 그 비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집을 지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부족할 것 같으면, 땅콩집처럼 함께 할 사람들을 찾으면 된다. 나는 땅콩집의 형태를 넘어 '우리가 사는 공간'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대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현욱 소장님의 이 말씀을 읽으며, 내가 살게 될 집이 먼 미래가 아니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문을 열며 by 이현욱 소장
단독주택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나이 들면 집 짓는다'이다. 세상에, 완전 거꾸로다! 아이가 어리고 부부가 젊을 때 단독주택에 살아야 한다. 아이가 커서 마당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부부가 늙어 계단 오르내리기 버거워지면 아파트로 옮겨 가는 게 맞지 않는가. 아이에게 학원과 시험이 아닌 추억과 사랑을 주고 싶다면 정답은 단독이다.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다 아이 낳고 단독에 살아보니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게 됐다.
오늘 글을 읽고 집에 대한 로망이 떠오르거나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렸다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메일로 연락주시면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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