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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반성

작성자
J
작성일
2016-12-31 17:46
조회
3146
올 한해는 유난히도 시간이 빨리 흘렀다. 병신년에 '병신'이 되지 않기위해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했고, 다행히도 올초 염원했던 것들을 대부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목표했던 것들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오는 허무함(혹은 더 큰 갈망?)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무엇인가를 했던 날들이 (몸은 힘들었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했고, 시간과 생각이 많아진 12월은 싱숭생숭함으로 가득했다. 어찌하였든 나의 올해는 어땠을까.

# 2016 반성

1. 책바
더할 나위 없었다. 연초에 적어둔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대부분 원하는 바 이루었다. 이유는 별 것 없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진지하게 임했다.

2. 저술
1) 독립출판
1월에 <머물러있는 청춘> 2쇄를 했고, 새로운 서점들을 발굴하여 입고했다. 그리고 9월에 책바 1주년을 맞이하여 손님들과 함께 쓴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을 출간했다. 두 권 모두 출간 자체는 매우 뿌듯하지만, 판매량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2) 기성출판
소설 속에 등장한 술에 대한 에세이 <소설 마시는 시간>을 출간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뒷 부분에.
3) 기고
연초에는 Publy에, 그리고 올 여름부터는 정기적으로 <채널예스>에 책과 술에 대한 기고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 <그라치아>, <하퍼스 바자> 등에 짧은 기고를 했다.

3. 니플리스
책바와 저술에 집중을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채널은 확장했지만, 매출은 그만큼 따르지 못했다. 하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왜냐하면, 좋은 제품이니까.

4. 자기 개발 (혹은 계발)
- 영어: 필요성에 대한 절실한 마음이 없으니 안 하게 된다. 사실 외국인 손님이 와도 적당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으니, 더 발전할 의지가 부족했다.
- 운동: 트래커 앱을 살펴보니, 약 150회를 헬스장에 갔다. 2~3일에 한 번씩 헬스장에 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목표했던 70kg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갈 때마다 (바쁘다는 이유로) 한 시간 이상씩 운동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살 찌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 보충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점을 알게된 이후에는 밤에 일을 하면서 떡 등의 간식으로 칼로리를 보충한다. 그래도 옷을 벗으면 몸이 좋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응?)
- 독서: 달성
- 여행: 뉴욕(5월), 제주(8월), 도쿄(10월)를 다녀왔다. 연초에는 아스날이 우승할 것 같아, 진지하게 런던 행도 고려했지만 역시나 김칫국을 마신 격이었다. 더불어 도쿄 대신 교토와 오사카를 가려 했으나, 당시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하여 행선지를 변경했다.

5. 기타
그렇게도 징징대며 원했던 브롬톤과 타투 모두 성공.


# 2016 키워드

일단 막 떠오르는 대로 써보자.

책바, 소설 마시는 시간, 혼밥, 헬스, 뉴욕, 인스타그램, 브롬톤, 타투, 아스날, 클래시로얄, 스타벅스 연희 DT, 카페콤마, 129-11, 비빔밥, 푸글렌, DUG, MET, 링컨 센터, 센트럴 파크, 휘트니 미술관, 에이스 호텔, 김렛, PDT,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 팔리아멘트, 라라랜드, NYCB, 안규철, 편리왕, 고흐의 아이리스, 연희동, 파타고니아, 호두까기인형, 채널예스, 조성진, 지프 랭글러, 마틸다, 카메라타, 매거진 B Seoul편, 오버워치, 쳇 베이커, 퇴사학교 강연, KBS(TV 책을 보다, 9시 뉴스, 황정민의 FM 대행진), 레베카, 지혜의 숲, 국립현대미술관, Time blocks, Lumen trails, 에디 히긴스 트리오, 에버노트, 튤립, 청수패밀리 (나빼고) ALL 결혼, 고독

1. 책바
올해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바를 통해 출간, 강연, 기고, 촬영, 인터뷰 등 그동안 인생에서 누리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고,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매.순.간. 행복했다. 물론 포기해야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가장 기억에 남을 키워드.

2. 소설 마시는 시간
물론 2년 전 독립출판으로 <머물러 있는 청춘>을 내긴 했지만, 전국의 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에 대한 무게감은 확실히 남달랐다. 올 3월부터 10월까지, 밤에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이 작업에 매달렸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내내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음.) 그리고 10월 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두근거림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담담했다. 그저 조금 더 글을 잘 썼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래도 책을 재밌게 잘 읽었다, 덕분에 이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칵테일과 술에 대한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라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리고 연말을 맞이하여, 재미난 경험도 했다. 대학 시절 '황족'이라 자처하며 즐겨들었던, KBS '황정민의 FM 대행진'에 나와 책을 소개했다는! 언제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겠는가.

3. 혼밥과 헬스
생각해보면, 일주일 21끼 중 약 18끼 정도를 혼자서 식사를 했고 일주일에 3-4번은 헬스를 했다. 즉, 2016년의 일상이었다는 소리다. 아마 내년도 이러하지 않을까.

4. 뉴욕
기대를 하며 방문했던 뉴욕은 감동 그 자체였다. 비 개인 뒤 청명함으로 가득했던 센트럴파크의 풍경, NYCB의 발레 공연을 보았던 링컨 센터의 차분한 분위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고흐의 아이리스, 건물 만으로도 '우와,우와'를 연발하게 만들었던 구겐하임과 휘트니 미술관 등등. 물론 매일 밤마다의 바 투어도 너어어무 좋았다. 감동을 받으러 조만간 다시 가고 싶다.

5. 인스타그램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 늘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그리고 지금 2016년을 떠올리는 이 순간에도 인스타그램을 참고하고 있음.

많은 것(곳)을 보고 듣고 읽고 가고 느꼈지만 그 중에서 간추리고 간추려서.
2016 영화: 라라랜드, 주토피아, 아마데우스 디렉터스 컷, 머니볼, 트럼보
2016 노래: 2015 쇼팽 콩쿨 우승 앨범(조성진), Moment(수지, 덕원), The build up(편리왕), Cheek to cheek(Louis & Ella), 라라랜드 OST
2016 전시: 보이지 않는 사랑의 나라(안규철, @MMCA), 아이리스(고흐, @MET),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김환기, @환기미술관)
2016 공연: 호두까기인형(국립발레단, @예술의전당), 클래식 발레(NYCB, @링컨센터), 레베카(@블루스퀘어), 라이언킹(@브로드웨이)
2016 장소: 푸글렌(도쿄), 링컨센터(뉴욕), MET(뉴욕), 센트럴파크(뉴욕), PDT(뉴욕), 에이스 호텔(뉴욕)
2016 책: 두 남자의 집짓기(구본준, 이현욱),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우리는 사랑일까(알랭 드 보통), 풀밭 위의 점심식사(윤대녕),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의 일(김연수)


# 2016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

1. 김영하 작가와의 인연

책바를 처음 오픈했을 때 농담 삼아 지인들에게 하던 소리가 있었다. "책바의 목표가 뭐야? 아님 성공 기준은?" "두 명만 오면 돼. 한 명은 전두환(정말 농담)이고, 한 명은 김영하 작가야."

책바가 있는 연희동에는 김영하 작가가 거주하고 있고, 종종 작품을 재미있게 읽어왔던(그리고 영향을 받았던) 그가 책바에 온다면 그야말로 나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만큼 설렜던 두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남겨본다.

Ep.1
어느 날 평상시처럼 저녁을 먹으러 연희동을 어슬렁 거리다가, 저 먼치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거리는 멀어도 유난히 큰 키와 검은 뿔테 안경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렇다. 그는 부인과 함께 저녁 마실을 나온 것이었다. 100m, 50m, 20m, 5m... 이렇게 가까워지는 동안 가슴은 쿵쾅거렸고, 오만 생각을 다했다. 그 때 당시 나는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고, 1) 모른척 지나간다 2)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3) 이어폰을 빼고 가볍게 목례를 한다 4) 이어폰을 빼고 책바 소개를 한다 5) 이어폰을 빼고 팬이에요!를 외치고 도망치듯 지나간다 등등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더 생각들이 떠오를려는 찰나, 그가 막 지나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사러가 쇼핑센터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그 때도 여전히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저만치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SNS에 못난 스스로를 탓하며 징징대는 글을 썼다.

Ep.2
책바에서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종종 오던 손님이 선물이 있다며 책을 건네 주셨다. 뭐지? 하고 봤는데, 김영하 작가의 <검은 집>이었다. 그리고 펼쳐보니, 내 이름과 함께 김영하 작가의 싸인이 담겨 있었다. 사연인즉슨, 손님께서 징징대는 내 SNS를 보시고 김영하 작가의 강연에 가서 사인을 받아오신 것이었다. 뭉클거리는 감정이 저 가슴 깊숙히부터 밀려 올라왔다. 정말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줄 몰랐던 순간.

내년엔 오시겠지.


2. 우연히 마주쳤던, 그러나 필연이라 여기고 싶은 리허설

지난 5월 뉴욕에 갔을 때, 재즈 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 태어난 곳은 뉴올리언스이지만, 부흥은 뉴욕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스케쥴과 가격을 고려하여 센트럴 파크 근처의 Dizzy's club coca cola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을 예약했다. 줄리어드 음대 졸업생들이 마더스 데이(Mother's day)를 기념하여 하는 공연이었다. 좋았다. 아들 딸들이 부모님을 모셔와서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졸업생들의 공연도 정말 멋졌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 건물 구석구석을 훑어봤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희미하지만 마음을 이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은 자연스레 그 소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센가 쿵쾅거리기 시작한 마음과 함께. 그 곳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았다. 정확한 장소를 파악해야 했고, 기어코 장소를 발견했지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무언의 표식을 지나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아무렴 어떠한가, 이런 것이 다 여행이지 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표식을 살포시 치우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계단식으로 솟아있는 관객석 꼭대기에 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아래 쪽에 있는 공연장에는 뮤지컬인지 발레인지 정체 모를 공연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이 실제로 얼마 남지 않았나보다. 리허설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완벽했고 황홀했다. 음악에 맞춰 턴을 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영상으로 찍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리허설을 관객석에서 보는 사람은 오직 나 한 명 뿐이었다. 황홀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다.


3.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뉴욕을 향해 긴 비행을 하던 길이었다. 나는 보통 어떤 나라에 가면, 가능한 그 나라의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서 가곤 한다. 왠지 그 나라에 다다르기 전에 치뤄야만 하는 의식 같은 행위이다. 이 때의 대상은 헤밍웨이였고, 그 중에서도 대표작인 <무기여 잘 있어라>를 선택했다. 페이지가 많기 때문에 15시간에 달하는 비행거리에 매우 적합한 책이었다.

장거리 비행의 유일한 장점은 책을 읽으며 위스키나 간단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상큼 달콤한 진토닉을 마시는데, 이 때는 왠지 드라이한 것이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승무원에게 위스키 온더락과 소다수를 요청했다. 위스키와 소다수 그리고 얼음을 더하여 섞으면 위스키 소다(보통 위스키 하이볼이라고 부른다)가 된다. 비행기에서도 간단히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인 것이다. 그렇게 위스키 소다를 만들어 천천히 음미를 하며 책을 읽던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나는 또다시 신문을 들고 전쟁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소다수를 위스키 잔 얼음 위에 천천히 따랐다. 다음에는 위스키 잔 속에 얼음을 넣지 말라고 해야지. 얼음을 따로 갖고 오라고 해야겠어. 그래야 위스키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고, 또 소다수를 부어도 갑자기 술맛이 싱거워지지 않거든. 위스키를 한병 사다 놓고 얼음과 소다만 갖자 달라고 해야겠어. 그게 현명한 방법이지. 좋은 위스키는 참으로 즐거운 거야.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지.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위스키 소다를 마시던 도중에, 위스키 소다가 등장한 문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묘사마저 너무 사랑스러웠다. 위 문장은 주인공의 독백이지만, 평소에 헤밍웨이 자신이 즐겨 마셨던 술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처음 책바를 오픈했을 때, 사람들에게 보통 이런 질문을 받았고 또 대답했다.

"왜 책바를 오픈하셨나요?"
"책을 읽을 때 술이 등장하는 문장을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꼭 마시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그래서 제가 열었어요."

"어떤 칵테일이 제일 맛있어요?"
"비행기에서 마시는 하이볼이 제일 맛있더라구요."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경우가 절묘하게 교집합으로 등장한 순간이 처음으로 온 것이었다. 아마도 이 때는 내 음주 역사상 손꼽히게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 이었으리라.


4. 글렌 굴드와 환기 미술관

한국 화가 중 김환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련함과 그리움이 느껴지고, 그와 부인인 김향안 여사의 이야기를 알게되면 그 마음은 더 짙어진다. 그러던 중, 올해 환기미술관에서 하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를 보게 되었다.

부암동 높은 산자락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특유의 고즈넉함이 가득하다. 아마도 나는 한가한 시간을 찾아 방문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더 강렬한 것 일수도 있으리라. 이번 전시는 3층으로 이루어진 본관에서 진행되었다. 그날도 역시 사람은 많지 않았고, 풍경이 그 모습을 대체했다.

1층과 2층에 있는 작품들을 차분히 감상하고, 3층에 올라갔다. 아래층과 달리 3층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말인즉슨 오로지 김환기의 작품과 나만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음악을 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 김환기의 단색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아리아>였다. 머지않아,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채운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김환기가 그렸던 푸른 단색화를 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었다.


5. 미친 놈의 아이리스

지금까지 세상에는 미친 화가가 세 명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미쳤다는 의미는 엄청난 칭찬이며, 시간이 지나면 리스트는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첫 번째는 피카소이고, 두 번째는 에곤 쉴레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나) 반 고흐이다. 고흐의 작품은 실제로 보는 것과 이미지로 보는 것이 천양지차다. 실물이 아닌 이미지만 보고 붓터치와 색감을 논해서는 안된다. 실물은 그야말로 엄청나니깐.

뉴욕 여행에서 미술관 투어에 대해 매우 기대를 했었고, 그 기대는 구겐하임과 MOMA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실, MET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안 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미술관 내부에서 센트럴 파크의 녹색 향연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공간도 발견했다. (공사 중이라 가보지 못했는데, 위층에 정말 멋진 카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흐의 <아이리스>를 발견했다.

진짜 나의 어설픈 글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저 색감도 미쳤고 붓터치도 미쳤다. 일정이 너무 바빴지만, 우두커니 서서 이 그림만 삼십분 이상 본 것 같다. 그리고 못내 아쉬워 한 바퀴 돌고 나가기 직전, 한 번 더 가서 봤다. 입 안에는 "고흐는 정말 미쳤어. 미친놈이야..."라는 말만 맴돌았다. 내부에 위치한 숍에서 20만원에 상당하는 레플리카를 판매했는데, 살까말까 이것도 한 삼십분을 고민했다. (결국 못샀다. 이 멍청아.)

종종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이런 잊지못할 감동을 만나기 위해서다. 더군다나 우연한 만남이었기에 그 값어치는 더 큰 것 같다. 글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가슴이 두근두근.


2016년은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또 이루었으며, 다양한 감동을 받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무언가 굳건히 결정 지어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싱숭생숭함으로 마무리되는 한 해이기도 했다. 어찌하였든, 정말 수고많았다.